빈티지, 포도 수확연도-양질의 제품 의미
증류연도, 맛•신뢰성에 영향…빈티지 표시 활성화

빈티지(vintage) 또는 프랑스어로 밀레짐(millesime)이라는 용어는 보통 와인에서 사용되는데, 원료인 포도가 수확된 특정 연도를 일컫는 말이다. 예를 들면 와인에 1988년이라는 숫자가 표시되어있으면 그 와인을 만드는데 사용한 포도는 1988년에 수확된 것이라는 뜻이 된다.
또 포르투갈의 ‘포트’(port)와 같은 특별한 와인에서는 빈티지가 단순히 포도의 수확연도의 의미를 벗어나 양질의 제품을 뜻하기도 한다. 즉 포트에서는 매년 규칙적으로 빈티지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고 수확 포도의 질이 좋다고 판단되면 그 해를 특별히 빈티지 제품을 생산하는 해로 정하기 때문이다.

빈티지와인은 그러나 최근 그 의미가 조금은 퇴색되고 있다. 과거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만 주로 와인이 생산될 때는 매년 기후 변화로 인해 포도의 작황과 품질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와인을 만드는데 좋은 조건을 가진 포도가 생산된 해의 와인은 자연히 높은 인기를 끌게 되었다. 빈티지에 따른 해당 와인의 정보를 알려주는 빈티지 차트가 등장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서 였다.
그러나 남미나 미국, 호주 등 이른바 신세계 와인들이 본격적으로 소개되면서 이러한 개념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들 지역은 매년 따뜻한 기후가 유지되어 항상 일정한 품질의 포도를 생산할 수가 있었다. 강우량이 적은 지역에서는 적절한 관개 시설로 얼마든지 수분을 공급해 줄 수 있었다. 또 포도 품질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첨단 와인제조 이론과 시설로 이를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심지어 빈티지 차트 무용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제 빈티지는 단순히 고객의 전통적 요구에 부응하는 의례적인 표시로까지 생각하는 사람도 많아지기 시작하였다.
한편 전통적으로 위스키나 브랜디와 같은 증류주의 경우에는 원료의 생산연도 보다는 증류 기술 및 그 후의 숙성 방법 등에 더 중점을 두어 왔다.
보리 같은 곡물의 경우에는 포도와 달리 해에 따른 품질의 차이가 크지 않고, 게다가 생산연도에 따른 미묘한 품질 차이 정도는 증류 과정에서 대부분 걸러진다는 생각에서였다. 따라서 이들 제품에 빈티지를 표시한다는 필요성이나 개념이 있을 리가 없었다.

최근 증류주에서도 재료의 생산연도(증류연도)가 궁극적인 맛의 차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개념 하에 빈티지 표시를 활성화하고 있는 제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단지 곡물의 품질 뿐만 아니라 그 해에 사용한 물의 수질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확대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일반적으로는 증류주에서의 빈티지가 그 술의 맛을 미리 알 수 있는 한 평가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매우 드문 것이 사실이다.
다만 위스키 등에서 증류연도를 표시하면 마치 일반식품에서 생산자의 이름 등 생산내역을 밝히듯이 해당 제품에 대한 일종의 신뢰성이 생기는 부가가치는 생길 수는 있다. 사람이던 물건이던 간에 그 출생 내력에 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빈티지 위스키는 현재 주로 싱글몰트 위스키 제품들에서 시도되고 있다. 아무래도 한 증류소에서 생산되는 제품이니만큼 증류연도에 따른 제품 관리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빈티지를 표시하는 방법도 단순히 증류연도만 표시하는 것에서 증류한 연월일과 그 뒤 숙성 후 병입된 날짜까지 같이 자세히 기록하는 제품들도 있다(사진 1).
위스키와 쌍벽을 이루는 고급증류주인 브랜디의 경우에는 위스키에 비해 아직까지는 상대적으로 빈티지 제품의 생산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고 있다. 다만 하인(Hine) 같은 일부 꼬냑 회사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관련 제품을 생산하고 있고 일부 알마냑(Armagnac) 제품들에서도 이러한 제품들을 볼 수 있다(사진 2).
비록 아직까지는 제한된 제품들에서 시도되고 있지만 주의 깊게 관찰해 보면 빈티지 위스키 또는 빈티지 브랜디라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진 1> 빈티지 위스키 미니어처(50ml)들이다. 왼쪽 싱글몰트 위스키의 경우 2003년에 병입되었다고 그 내력이 기록되어 있다. 오른쪽 제품은 2000년 뉴 밀레니엄 기념으로 생산된 싱글몰트위스키이다.

<사진 2> 빈티지 브렌디 미니어처(50ml)들이다. 왼쪽 제품은 2000년 뉴 밀레니엄 기념으로 생산된 쿠보와지에 꼬냑이고, 오른쪽 제품은 지난 1946년 증류된 알마냑 듀페이론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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