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흥주, 보리누룩 발효한 ‘복합발효법’ 사용
화조주, 혼례 축하주로 내놓는 풍속서 유래

<사진 17-1>사진 왼쪽은 여아홍 미니어처(40ml, 18%)이고, 오른쪽은 화조주 미니어처(40ml, 18%)이다.

오늘날 중국술이라고 하면 흔히 ‘고량주’로 널리 알려진 독한 백주를 금방 떠올리게 된다. 독특한 향과 함께 기름진 중국요리에 곁들여 작은 잔으로 마시는 강한 백주는 누구도 부인할 수없는 중국술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유구한 중국역사를 통하여 백주와 같은 높은 도수의 술이 중국사회에 소개된 것은 정작 그렇게 아주 오래 전의 일은 아니다. 술을 증류하는 기술은 몽골제국에 의해 건설된 원나라 때 페르시아를 통하여 중국으로 들어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따라서 원나라 이전의 중국에서는 증류주인 백주를 마셨던 것이 아니라 종류가 다른 발효주 계통의 술을 마셨던 것이다. 바로 이 중국전통의 발효주가 중국에서는 그 색깔을 따서 ‘황주’라고 부르는 술이다. 즉 한말의 삼국지 시대에 등장하는 영웅들이나 송나라 시대의 수호지에 나오는 108 호걸들이 마시던 술들이 바로 이 황주였다는 뜻이 된다.
황주는 찹쌀 또는 차조를 주원료로 만든 발효주로서 발효에 보리누룩을 사용하여 짙은 황색을 띠어 황주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알코올 도수는 같은 발효주인 와인이나 일본 청주와 비슷한 14~18% 정도이고 맛이 진하면서도 부드러워 각종 요리의 맛을 내는 데에도 사용되고 있다. 황주는 그 오랜 역사와 함께 종류도 셀 수 없이 많지만 백주가 발달하면서 상대적으로 생산지가 축소되면서 생산량도 줄어들고 있다.

황주 중에서 가자 유명한 술은 단연 ‘소흥주’(紹興酒; 사오싱지우)라는 술이다. 소흥주의 생산지인 소흥현(紹興縣)은 중국 절강성내에 있는 작은 도시로 항주 옆에 위치하고 있다. 소흥은 특히 역사적으로 춘추시대 월(越)나라의 수도가 있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바로 그 유명한 와신상담(臥薪嘗膽) 고사의 주인공인 월왕 구천이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역사를 썼던 곳인 것이다. 월왕 구천이 패전 이후에 오왕 부차에게 바쳤던 술이 소흥주라는 설도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와신상담의 과정 중에 구천이 복수의 칼날을 갈며 부하들과 마셨던 술도 바로 이 소흥주였을 것이다. 소흥은 지금에 와서는 근대 중국의 대문호 노신(魯迅)을 배출한 곳으로도 이름을 떨치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유명한 것이 바로 소흥주이다.
소흥주는 황주 중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술로서 찹쌀을 보리누룩으로 발효시켜, 교외에 있는 약간의 미네랄이 포함된 감호(鑒湖)의 물로 만들어 진다. 누룩 이외에 신맛이 나는 재료나 감초를 원료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제조 방법은 찹쌀에 누룩과 술, 약을 넣어 발효시키는 복합발효법이 주로 사용되어진다. 색깔은 황색 또는 암홍색으로, 오래 숙성하면 향기가 더욱 좋아져 상품가치가 높아진다.

소흥주는 만드는 방법에 따라서 원홍주(元紅酒), 가반주(加飯酒), 선양주(善釀酒), 향설주(香雪酒) 4가지로 나눠진다. 이 중 가반주와 원홍주는 약간 쓴 맛이 돌며 향설주와 선양주는 단맛이 난다.
원홍주는 소흥주 전체 생산량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생산량이 많다. 1979년의 전국평주회의에서 우량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원홍주라는 이름은 술가마에 붉은 칠을 하므로 붙여진 것이라 하기도 하며, 과거시험에 장원을 하듯이 첫째로 맛있는 술이라는 데서 붙여진 것이기도 한다.

가반주는 그 이름 때문에 잘못 반주로 마시는 술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다른 소흥주에 비해 찹쌀을 10%가량 더 사용하기 때문에 얻은 이름이다.
향설주는 물 대신에 소흥지방의 조소(糟燒)를 사용하여 빚기 때문에 도수가 20% 정도로 비교적 높으며 그 맛은 달고 향이 진하다. 선양주는 원홍주를 2~3년 정도 묵혔다가 빚은 것으로, 옛날 어떤 선량한 노파가 신선으로부터 이 술을 얻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소흥주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옛날 소흥에 살던 한 남자가 아내가 아이를 갖자 기분이 좋아서 아이가 태어나면 친구들에게 대접을 하기 위해 술을 빚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딸이 태어나자 화가 나서 술을 마당 한구석 나무 밑에 묻어 버렸다. 훗날 딸이 총명하게 자라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친지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옛날 묻어 버렸던 술이 생각나 땅을 파보니 아주 맛있는 술이 되어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술을 여아홍(女兒紅; 뉘얼홍)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 후 소흥 지방에서는 한동안 딸을 낳으면 술을 빚어 땅에 묻어두는 관습이 생겼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소흥주 여아홍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사진 17-1).


이밖에도 소흥주에는 유명한 화조주(花雕酒; 후아띠오지우)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가반주의 하나인데 소흥 지방에서 예로부터 딸을 갖게 되면 가반주를 빚어 꽃을 그려 넣은(花雕) 항아리에 담아 두었다가 딸의 혼례를 치르는 날 축하주로 내놓는 풍속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또는 술을 담은 술독에 꽃무늬가 배어나온다는 데서 유래됐다고도 한다. 보통 십 년 정도 숙성시켜 만든다. 이런 까닭에 술을 얼마큼 묵혔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가반주나 화조주나 모두 한가지로 가반주에 속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특히 오래 묵힌 술은 이름 앞에 진년(陳年)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여기서 진(陳)은 오래되었음을 뜻하는 말이다.
소흥주는 흔히 따뜻하게 데워 마시는데 이때 마른매실을 하나 넣어서 마시면 맛을 더 풍부하게 해 준다는 속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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