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황금기를 맞고 있는 ‘일본소주’

고구마소주(왼쪽)와 쌀소주(오른쪽)의 미니어처들. 모두 100ml에 25% 제품이다.

오늘날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의 국민주 ‘소주’의 기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과거 몽골제국의 전성기 때인 13세기에 중국 원나라를 통해 중동지역의 증류법이 소개되면서 시작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지금은 꽤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안동소주’도 사실 고려 말에 일본 원정을 목적으로 한 몽골군의 병참기지가 안동에 위치한데서 그 유래가 시작됐다.

과거 대부분의 문화 전파 경로가 그러했듯이 소주의 제조법 역시 이렇게 한반도를 거친 뒤 자연스럽게 일본으로 건너갔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포로에 의해 전수됐다는 설도 유력하다. 물론 오키나와를 거쳐 남방으로부터 전파됐다는 주장도 있다.

어떻게 보더라도 일본의 소주 역사는 결코 짧지 않은 전통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오래 동안 일본 소주는 전통 일본주인 일본 청주(사케)의 그늘에 가려 큰 각광을 받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일본 고유의 식습관에 비춰 알코올 도수가 높은 증류주인 소주가 제대로 자리 잡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최근 일본소주는 거의 황금기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이는 일본 애주가들의 취향 다변화와 함께 그동안 꾸준한 제조기술 개선을 통한 양질의 제품 생산이 소비자들에게 어필한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소주에는 크게 갑류소주(甲類燒酎; 고루이쇼츄)와 을류소주(乙類燒酎; 오츠루이쇼츄)의 두 종류가 있다. 일본의 근대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메이지시대(1868~1912)에 영국으로 부터 양조용 알코올의 대량 생산이 가능한 연속식 증류기가 들어오게 된다. 이를 통해 생산되기 시작한 새로운 소주는 당시 일본인들에게 첨단 기술의 산물로 크게 호응을 얻어 이른바 ‘신식소주’로 받아들여졌고, 반면 전통적인 소주는 ‘구식소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런 사고방식의 영향으로 1953년 제정된 주세법에 의해 소주를 증류법에 의해 분류할 때도 신식소주를 ‘갑류소주’로, 그리고 구식소주를 ‘을류소주’로 각각 명명했다.

갑류소주는 말하자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소주 즉 희석식 소주에 해당된다. 즉 고구마, 당밀, 타피오카 등을 원료로 연속식 증류기를 거쳐 얻게 되는 주정이 기본 재료가 된다. 여기에 물을 섞어 적절히 희석하면 갑류소주가 되는 것이다. 불순물이 적고 마시기 쉽다는 특징이 있으나 깊은 풍미는 없다. 가격도 저렴하다. 따라서 혼합 술 음료를 만들거나 담금술을 만들 때 많이 사용된다. 갑류소주에는 원칙적으로 별도의 감미료를 첨가하지 않기 때문에 술맛은 사용하는 물에 좌우되고, 아무래도 단맛이 나는 우리나라 소주와는 맛에서 차이가 있다. 알코올 도수는 주세법에 의해 36% 미만으로 규정되나, 일반적으로 25% 소주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보리소주(왼쪽)와 메밀소주(오른쪽)의 미니어처들. 모두 50ml에 25% 제품이다.
울류소주는 보리, 고구마 등의 단일 재료를 사용해 단식증류기로 증류한 제품을 말한다. 단식증류법의 특성 상 알코올 생산성은 연속증류기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지만 증류 시 재료 고유의 향미 성분이 그대로 유지돼 특유의 풍미와 깊이 있는 맛을 보여준다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지금에 와서는 고급품으로 인식되고 있고 또 실제로도 그러하지만 과거에 제정된 주세법 상으로는 을류로 표현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전통소주 제조업체들은 ‘을류’라는 용어가 마치 ‘갑류’에 비해 질이 떨어지는 제품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대신 ‘본격소주’(本格燒酎)라는 용어를 병에 병기할 수 있게 해달라고 청원하였고 지금은 모든 을류소주에서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본격소주에 사용되는 재료에는 보리, 고구마, 쌀, 메밀(소바), 흑설탕의 5대 주요 원료가 있다(사진 12-1, 12-2). 그러나 이 중에서 일본소주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는 것은 역시 고구마 소주(이모쇼츄)다. 일본 최남단의 현인 가고시마현을 중심으로 한 규슈지방에서 생산돼 그 깊은 풍미로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고구마 소주는 가고시마현을 일본 유일의 청주를 생산하지 않는 현으로 만들 정도이다. 소주가 일본 남단의 규슈 섬을 중심으로 발달한 이유는 아무래도 따뜻한 기온이 청주보다는 소주 생산에 여러 가지로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일본 본격소주의 열풍은 대단해 일본에는 이들만을 따로 취급하는 바도 등장하고 있으며, 재료, 제조법, 저장법 등을 특화시킨 프리미엄 소주도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 당연히 상당히 고가의 제품들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본격소주 역시 대부분의 제품들은 25%에 맞춰 생산되고 있다. 이 정도의 알코올 도수라면 우리나라에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대로 마시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음주문화는 독주에 그렇게 익숙하지 않다. 물론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사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얼음, 물 또는 더운 물 등에 섞어서 마시는 것이 보통이다. 그냥 물에 섞어(미즈와리) 마실 때는 보통 1:1의 혼합비로 그리고 더운 물에 섞어(오유와리) 마실 때는 6:4의 비율로 혼합한다. 얼음에 타 마시는 방식은 영어 rock의 일본식 발음으로 ‘로꾸’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앞으로 일본을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꼭 사케만이 아니라 일본 본격소주를 즐겨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만일 좀 더 의욕이 있는 경우에는 본격소주의 5대 원료인 보리, 고구마, 쌀, 메밀, 흑설탕 소주들을 모두 음미하면서 재료의 차이에 따른 풍미의 변화를 체험해 보는 것도 애주가로서는 평생 잊지 못할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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