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주’ 기름진 중국요리에 어울리는 강한 향 특징
장향형 백주, 장맛같은 ‘깊은 맛’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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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말에 시 백편”으로 상징되는 중국 당조(唐朝)의 유명한 시선이자 주호인 이태백은 일찍이 ‘월하독작’이란 시에서 다음과 같이 술에 대한 그의 사랑을 표현한 바 있다. “천지기애주 애주불궤천(天地旣愛酒 愛酒不愧天; 하늘과 땅이 이미 술을 즐기니 술을 마시는 것은 하늘에 부끄럼이 없는 일이다)” 그런가하면 귀거래사로 필명을 드높인 육조시대 최고의 시인 도연명은 말년에 “단한재세시 음주불득족(但恨在世時 飮酒不得足; 단지 살면서 충분히 술을 마시지 못한 게 한스러울 뿐이다.)”라고 애주가의 호연지기를 과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굳이 이태백이나 도연명이 아니더라도 광활한 대륙을 배경으로 흔히 오천년으로 표현되는 중국의 유구한 역사를 통하여 술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와 그에 대한 문인들의 낭만적인 수식들은 그야말로 밤하늘의 별처럼 많고도 찬란할 것이다.

그러면 정작 오래 동안 이 찬미와 사랑의 대상이 되었던 중국술들은 현실적으로는 과연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을까? 물론 한마디로 중국술이라고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광대한 땅의 크기만큼이나 그 종류가 실로 다양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근대에 들어서는 외래문화의 영향으로 맥주와 포도주가 중국사회 깊숙이 스며들면서 중국 자체 브랜드까지 속속 등장하며 점점 확실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사실 오늘날 중국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술은 맥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중국산 맥주를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다. 포도주 또한 최근 중국 경제의 성장과 함께 고급 저도주를 지향하는 사회 분위기에 맞추어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소비량에 관계없이 이런 술들을 진정한 중국술로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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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전통 중국술이라고 불릴 수 있는 술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있을까? 먼저 중국 전통술의 기본 종류를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중국술에는 크게 (1)수수(고량)를 중심으로 곡물을 누룩으로 발효한 후 이를 증류시킨 백주와 (2)찹쌀이나 수수 등을 원료로 누룩을 띄워 발효시킨 황주 그리고 (3)고량주에 약재를 첨가하여 만든 약주 또는 보건주가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중국술이라고 하면 기름진 중국요리에 어울리는 강한 향과 높은 도수의 ‘중국백주’가 일차적으로 떠올려지지 않을 수 없다.

백주(白酒; 빠이지우)는 한마디로 말해서 수수(고량)를 주된 원료로 하여 증류한 백색의 투명한 술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고량주’로도 불리고 있으나 이는 백주의 주재료를 강조한 것으로 사실 정확한 용어는 아니다. 물론 고량만을 재료로 만든 백주도 있지만 많은 경우 고량 이외에 여러 가지 곡물을 섞어서 만든다. 예를 들어 유명한 고급 브랜드 백주인 오량액(五粮液; 우량예)의 경우 고량, 밀, 쌀, 찹쌀, 옥수수 등 모두 5가지 곡식을 원료로 만들어 이름도 그렇게 지어진 것이다. 심지어 일부 백주의 경우 고량을 사용하지 않고 만든 제품들도 있다.

백주에 관련된 용어 중 또 하나 우리나라에서 흔히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것에 ‘빼갈’이란 말이 있다. 이 말 역시 백주와 같은 뜻으로 종종 사용되고 있으나 사실 빼갈은 중국 백주의 한 상표인 백간(白干; 북방식 발음으로 빠이갈)를 가르치는 말이다. 상당히 저렴한 제품으로 최근 우리나라에도 정식으로 수입되고 있다. 아마 백주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초기에 가격 경쟁력 때문에 대중에 널리 소개된 연유로 이 이름이 백주와 동일시되었던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백주도 증류 후에는 일정 기간 숙성 과정을 거친다. 최근에는 중국의 경제 성장과 함께 고급 제품을 지향하는 사회 분위기에 맞추어 수년 이상 장기 숙성된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다만 백주는 나무통에서 숙성 과정을 거치는 위스키나 꼬냑과는 달리 항아리에서 숙성시키기 때문에 숙성 기간이 오래 되어도 색깔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중국 백주를 제대로 이해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백주의 향형(香型)에 관해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향형이란 글자 그대로 향의 종류란 뜻인데 백주에는 모두 5가지의 주요 향형이 있다. 즉 ①농향형(濃香型) ②장향형(醬香型) ③청향형(淸香型) ④미향형(米香型) ⑤기타, 겸향형(其他, 兼香型)의 다섯 종류이다. 이 향형은 일부 저급 백주 이외의 대부분 백주 제품의 상표에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잘 모르는 술이라도 미리 기본적인 맛을 알 수가 있다.

먼저 농향형 백주에 대해 알아보자. 농향형은 우리가 가장 익숙한 중국술의 향이다. 풍부하면서도 매우 강한 향으로 영어로는 “strong flavor”로 번역되고 있다. 백주의 약 70%에 해당되는 제품들이 이 향을 표방할 정도로 매우 인기가 있는 향형이기도 하다. 전통적 명주인 오량액(五粮液)을 필두로 최근 중국에서 가장 비싼 백주 중의 하나로 인정되고 있는 수정방(水井坊)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공부가주(孔府家酒) 등이 바로 이 농향형에 속한다. 사진은 각각 수정방과 공부가주의 50ml 미니어처들이다(그림 7-1). 사실 농향형 백주는 그 제품이 워낙 많아 명주에 속하는 술만 해도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그만큼 백주 애주가들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뜻이 된다.

장향형 백주는 글자 그대로 장맛과도 같은 깊은 맛이 느껴진다. 여기에는 단연 모태주(茅台酒; 마오타이지우)가 돋보인다. 1972년 역사적인 미-중 수교의 물길을 튼 닉슨대통령의 중국 방문 시 국빈만찬주로 소개되어 일약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게 된 술이기도 하다. 중국 귀주성에서 생산되며 중국 명주 중에서도 언제나 첫 번째로 꼽히는 술이다. 모태주 이외에 사천성에서 생산되는 랑주(郞酒)가 또 하나의 장향형 명주로 유명하다. 사진은 이들의 50ml 미니어처들이다(그림 7-2). 장향형 백주는 그러나 일부 명품 이외에는 그 맛이 그렇게 대중적이지는 못한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출시되는 제품 수도 적고 당연히 이 향을 가진 제품들을 만날 기회도 그만큼 많지 않다.

청향형 백주는 깨끗하고 산뜻한 맛으로 특징 지워진다. 그러나 이 향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향이 별로 강하지 않기 때문에 대신 독한 알코올 기운이 상대적으로 많이 느껴져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생산 제품만 보면 전체 백주 중 약 15%를 차지하여 농향형 다음으로 많이 생산되고 있다. 산서성 분양현에 있는 행화촌(杏花村)이라는 마을에서 생산되는 천오백년 역사의 분주(汾酒)가 대표적인 술이다. 이 분주에다 죽엽 등을 넣어 만든 일종의 리큐르가 잘 알려진 죽엽청주(竹葉靑酒)이다. 미향형 백주는 쌀을 주재료로 만들어 쌀 향이 강하게 나는 백주를 말한다.

마지막으로 겸향형 백주는 농향과 장향이 적절히 어우러진 향을 내는 독특한 향형의 술을 말한다. 최근에 우리나라에도 널리 소개되고 있는 호남성의 주귀주(酒鬼酒)가 이 향형의 대표적인 술이다. 사진은 독특한 병 모양을 가진 주귀주의 50ml 미니어처들이다(그림 7-3).
중국의 백주 증류소는 전국적으로 5000여개에 달할 정도로 많다. 게다가 증류소마다 여러 가지 상표의 제품들을 계속 개발하여 생산하고 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다양한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설명한 향형의 기본만 파악하고 있으면 그 많은 중국 백주도 그렇게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다. 여러분들도 기회가 될 때 향형을 염두에 두고 중국술을 음미하면 그 즐거움이 한 층 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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