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肝질환, 보험•사회지원제도 확대 절실

만성 간질환자의 사회적 차별 해소방안

만성간질환 역학•사회적 특성
▲국내 만성간질환 역학적 특성

▲ 김동준 교수
한림의대 내과학교실
우리나라는 만성간질환에 의한 유병률과 사망률이 높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4년도의 간질환에 의한 사망률은 6위를 차지하고 있고, 특히 40~50대 남자에서는 암에 이어 간질환이 사망률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만성간질환은 간암의 원인이며, 간암은 위암, 폐암에 이어 암 등록순위 3위의 암이다. 결국 만성간질환은 간질환 자체 뿐 아니라 간암의 발생을 야기하므로 간암과 만성간질환은 하나의 범주로 파악되어야 하나, 현재의 통계자료 분류방식은 이를 분리하여 분류하므로 만성간질환이 미치는 영향이 실제보다 축소되어 파악되기 쉽다. 더욱이 경제활동이 활발한 40~50대에 간경변, 간암과 같은 합병증이 발생하기 쉬워 만성간질환으로 야기되는 문제는 개인에 국한되지 않고 한 가정 전체의 존립에 영향을 미치게 되며 궁극적으로 사회의 생산성을 저하시키는 요인이 된다.

▲국내 만성간질환의 사회적 특성
우리나라는 OECD국가들 중에서 경제적 수준이 높은 데도 불구하고 간염환자가 많은 소위 ‘간염의 왕국’이다. 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우리나라가 정책과 각종 사회적 도구를 이용하여 간염 환자를 어떻게 다루어(?) 왔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고혈압이나 뇌질환, 당뇨병, 만성신부전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질환이다. 그러나 만성바이러스성간염은 전염성질환으로 개인적인 질환과는 달리 질병의 이환이 환자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질환과 달리 전염성질환은 개개 환자의 치료 뿐 아니라 확산방지를 위한 국가의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며, 그 중요성이 개인적인 질환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는 전국민 의료보험이 강제되고 있으므로 결국 특정질환의 관리방식이 모두 정부에 의해 결정되며, 그 책임 또한 전적으로 정부에 귀속된다. 이런 관점에서 왜 아직도 우리나라가 OECD국가들 사이에서도 아직 ‘간염의 왕국’으로 남아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정부 차원의 전염병관리에 있어서 몇 가지 문제점들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대표적인 정책 오류는 간염 환자에 대한 정책적인 부당차별과 무분별한 과장홍보의 예이다. 1980년대 초 발효되었던 B형 만성간염 환자의 취업제한관련 법령은 만성간염 환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질병을 알리거나 치료 및 관리를 받는 것을 꺼리게 하는 상황을 유도하여 오히려 확산을 부추기기도 하였다. 취업의 제한은 직접적으로 경제적 불이익을 가져오게 하였고 결국은 만성간염 환자의 많은 수는 사회-경제적 약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또 매스컴에서도 ‘술잔도 돌리지 말라’고 대대적인 홍보를 하면서 간염환자 옆에만 앉아도 전염이 되는 듯 오도했다. 이런 매스컴의 희극적인 오도는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왔다. B형 간염은 결코 음식을 통해 전염되는 것도 아니고, 공기를 통해 전염되는 것도 아니며, 일상적인 접촉으로는 전염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당시 만들어진 간염환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직도 계속되면서 환자와 가족들이 감당해야할 사회적 편견으로 멍에가 씌워져 있다.

우리나라도 타 아시아 국가와 마찬가지로 모체-태아 감염을 통해서 가족 내 전파가 흔히 일어나 많은 경우 가족 구성원의 다수가 질환에 이환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영유아시기의 B형 간염백신의 접종의무화는 대만이나 태국과 같은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하여도 그 시작이 늦었다.
그러다가 1998년부터 약제가 등장하였다. 환자들은 병을 고쳐야겠다는 의지를 가졌지만,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건강보험은 유난히 만성간질환 환자에게 상대적으로 많은 제약을 가했다.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은 개인적인 질환에 비해 터무니없이 엄격한 만성간염에 대한 건강보험심사평가 기준이 정당화될 근거는 없으며 또한 아직도 만성간질환 환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는 가장 뚜렷한 증거이다.

아•태 4개국 건강보험 급여 비교
1993년 인터페론으로 시작된 항바이러스 치료는 이후 1999년 ‘라미부딘’이 국내에서 사용가능하게 됨으로써 본격적으로 만성바이러스성간염 환자들의 예후를 현저히 개선시키기 시작하였으나, 건강보험 급여기준의 까다로움으로 인해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나 기간은 지극히 제한적이며 자의적으로 급여인정여부와 기준이 결정되고 있는 실정이다. 예를 들면, 고혈압이나 당뇨병의 경우 새로운 치료제가 개발되어 시판될 때에 약제의 급여일자에 제한을 두지 않고 기존의 유사 계열 약제와 동일한 투여기간을 인정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새로운 항바이러스제의 보험급여 여부와 투약기간을 심사평가원만의 잣대로 제한하는 것은 형평성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다.
나아가 투약기간의 제한은 경제적 부담으로 인한 투약중단을 유발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하여 상당수의 환자는 질환의 진행 혹은 급성악화와 같은 위기상황을 초래한다. 즉 급여제한이 질병악화를 유도하는 것이다.

만성질환이며 동시에 전염성질환이라는 점에서 결핵이나 에이즈와 만성바이러스성간염을 비교한다면, 결핵과 에이즈는 정부에서 치료 약제를 무상 공급해주고 있는 반면에 만성간염은 이러한 혜택이 전무할 뿐 아니라 심지어 보험급여조차 제약받고 있어, 만성간염 환자가 정부의 지원으로부터 얼마나 소외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이해를 더 깊게 하기 위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 4개 국가의 건강보험 급여기준을 비교해 본다. 이 비교를 통해 2008년 극히 최근에 대폭(?) 확대된 급여기준조차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미흡한 수준임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도표 1].

보장성 수준과 지원제도 비교
▲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 비교

현재 우리나라에서 국가가 관리하고 있는 만성질환 및 손상질환군은 총 19개 군이며, 암환자 지원제도와 희귀난치성질환지원제도를 통해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만성 간염과 간경변 등 간질환은 ‘암환자 지원제도’ ‘희귀난치성질환지원제도’에서 모두 제외되어 있음은 물론 간질환 환자를 위한 별도의 지원제도도 없다.
그러면 왜 간질환이 고혈압, 고지혈증, 비만, 당뇨, 골다공증보다도 덜 중요한 질환으로 홀대를 받고 있는지 또 어떻게 하면 간질환에 대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부당한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을지를 알아보기 위해 2005년 복지부의 중증질환 대상 보장성 강화계획을 통해 우선적으로 지원되는 질병선정 기준을 살펴보면 질병선정의 기준이 전문가 조사결과와 진료비용 2가지 기준이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 기준인 전문가 조사기준에서 간질환은 중증도 기준 사망률이 2006년 사망원인 5위이므로 중요한 질환임이 분명하다. 더욱이 위에서 언급한대로 간암의 주요 원인질환이므로 만성간질환의 관리는 곧 간암의 관리와 이어지는 후방파급효과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중요하다. 또 주목할 점은 연령별사망률로 경제활동이 가능한 30~50대 사망률이 암 다음으로 높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활동을 중단한 노령인구에서 호발하는 고혈압이나 골다공증 등의 질환과 비교하여 사회경제적 중요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 기준인 진료비용 산정에서 보다 큰 문제가 있는데, 복지부가 ‘객관적인 자료’로서 채택하고 있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요양급여’ 자료는 순전히 실제 의료비용이 아니라 심평원에서 정한 ‘요양급여’ 비용이다. 예컨대, 만성신부전의 혈액투석이 요양급여의 대상이 아니라면 실제 환자가 부담하는 의료비용은 막대하지만 심평원의 ‘요양급여’ 자료만으로 의료비용을 추정할 때 의료비용이 전혀 소요되지 않는 질환으로 파악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심평원에서 만성간질환에 대해 자의적으로 요양급여를 ‘제한’한 후, 다시 그 ‘제한된 요양급여’를 객관적 기준으로 질환의 중요성을 결정하는 자가당착 때문에 만성간질환이 계속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질병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 추계자료는 심평원의 요양급여 자료와 달리 암 다음으로 사회경제적 비용이 크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데, 직접비용인 의료비용에 간접비용인 사회적 비용을 더하면 간질환은 암 다음으로 높아진다[도표 2]. 따라서 비용산정 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요양급여’ 자료를 ‘객관적인’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간질환의 경우 비급여 진료비 발생이 높고, 또한 이로 인해 진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으며, 무엇보다 간접 의료비 발생이 높은 질환임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사회적 지원제도 비교
다음으로 건강보험 이외의 사회적 지원제도가 각 질환별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검토해 보면 만성 간질환자들은 건강보험에서 부당한 불평등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지원제도에서도 상대적으로 불평등한 상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건강보험과 사회적 지원제도 모두에서 빠져 있는 사각지대에 만성간질환 환자들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만성신부전증, 암질환과 비교해 보았을 때 의료급여 간질환자들에게만 적용되는 사회지원제도가 부족하며[도표 3], 장애등록 현황에서도 간장애인의 경우 6,083명으로 신장장애인 45,484명, 호흡기장애인 13,390명과 비교하여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이는 만성간질환자들의 수가 다른 만성질환자들보다 적은 것이 아니라 장애진단 기준이 타 질환에 비하여 지나치게 엄격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간질환 장애인으로 등록된 경우에도 여명이 너무 짧아 혜택을 받는 기간은 극히 한시적이다.

이처럼 만성간질환자들은 보험급여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사회적 지원제도에서도 불이익을 받고 있는 상황이므로 환자특성을 고려한 사회적 지원체계가 절실히 요구된다. 간질환 환자들은 경제적인 활동이 가장 왕성한 시기에 병이 발생하고, 가족 내 감염자가 추가로 있을 수 있어 특히 가중치를 두어야한다. 그러므로 앞으로 만성질환 관리정책 선정과 보장성 확대 정책결정 시 연령별 사망률과 사회경제적 비용이 기준으로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의사들 역할에 대한 제언
만성 간질환 환자와 그 가족들이 겪어왔고 또 겪고 있는 건강보험에서의 그리고 사회적 지원에서의 부당한 차별을 인식하면 각 학회와 의사협회가 비록 최소한의 책임을 다했다고는 하지만 존경받는 전문가로서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충분히 다 하지는 못하여, 결과적으로 간질환 환자들의 편익과 혜택이 상대적으로 제한되는 것을 묵인하였다는 자성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현재까지 만성간질환 환자들이 받았던 사회적 불이익을 고려하여 볼 때 보다 그 동안 받지 못했던 의료와 사회보장의 혜택을 되찾아 주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본란의 글은 대학간학회지에 발표된 “우리나라 만성간질환 환자들의 당면 문제점과 대한간학회의 역할-사회적 편견, 건강보험요양급여 미비, 복지지원제도로부터 소외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특별기고(대한간학회지 14권 2호 125~135쪽)를 요약 발췌한 것입니다.

[도표 1] Comparison of Health Insurance Reimbursement Policy of Chronic Hepatitis B in Korea, Japan, China, and Australia

[도표 2] 주요 질환별 사회경제적 비용추계

[도표 3] 주요 만성질환의 사회적 지원제도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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