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키, 강한 아니스향 특징…주로 식전주로 사용

라키, 우윳빛 낭만-강한 남성적 체취 느낄 수 있어

지형적으로 동서양에 걸친 특수한 위치에 있는 터키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국가다. 특히 6.25 동란 때는 연합군으로서는 네 번째로 많은 군인을 파견하여 우리나라와도 남다른 인연이 있는 나라다. 이 때문에 잘 알려져 있듯이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형제의 나라’로 불리기도 한다.

또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 2002년 월드컵에서는 4강전에서 우리와 격돌하기도 하여 더욱 친숙한 느낌을 주는 나라가 되었지만, 정작 터키에 관해서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오랜 이슬람 역사를 지닌 터키는 20세기 초에 현재의 터키공화국 건국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케말 파샤)의 주도하에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세속 국가로서 유럽식 제도를 채택하여 새 출발을 한 나라다.

물론 지금도 국민의 90% 이상이 이슬람 신자이지만 공식적으로는 국교가 아니며 타 종교의 활동도 비교적 자유롭게 허용되고 있다.

터키의 음주에 대한 전통 역시 과거 이슬람교에 의한 사회적 통제가 엄격했을 때도 인근 아랍 국가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었다. 17세기의 한 기록에 의하면 당시 이스탄불에만 100개의 증류소가 있었다고 한다.

국가 정책상 유럽연합(EU)으로의 가입을 강력히 원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는 더욱 음주에 특별한 제한이 없어, 맥주 등의 술을 언제든지 쉽게 맛볼 수 있다.

이러한 터키에 이른바 국민주라고 불리는 술이 있다. 포도주스를 일차 증류하여 수마(suma)로 불리는 포도주정(grape alcohol)을 만들고, 이를 다시 아니스 열매(aniseed)와 함께 이차 증류하여 만든 라키(raki; 터키식 발음으로는 라크로 발음된다)라는 술이 바로 그것이다.

포도주스는 건포도 또는 생포도에서 추출하는데 최근에는 생포도로 만든 제품이 고급품으로 인기가 높다. 근래에 와서는 사탕수수로 만든 주정을 이용한 제품도 많이 출시되고 있다.

아니스 열매와 함께 이차증류를 하였기 때문에 강한 아니스 향이 나며 주로 식전주로 사용된다. 알코올 농도는 보통 40%가 넘는 강한 술이다. 아니스는 이집트가 원산지인 미나리과 식물로서 유럽, 터키, 인도, 남미 등에 널리 분포, 재배되고 있다. 그 열매인 아니시드는 독특한 향으로 향료나 빵, 술의 재료로 사용된다.

아니스를 이용한 술은 그리스의 우조(ouzo), 이태리의 삼부카(sambuca), 프랑스의 파스티스(pastis)와 같이 지중해 주변 국가들에서는 오래 전부터 광범위하게 제조되어 오고 있다. raki도 결국 이들 계열에 속하는 술로 강한 아니스 향은 한번 경험하면 절대 잊지 않을 정도의 독특한 인상을 남기게 된다.

<3-1>

<3-2>

라키는 스트레이트로 마실 수도 있으나 가장 보편적인 음용 방법은 물과 직접 혼합하여 마시는 것이다. 이때 일종의 화학반응으로 알코올에 용해되어 있던 아니스의 엣센셜오일(essential oils)이 물과 반응하여 침전되어 나오면서 투명했던 술 색깔이 사진에서와 같은 젖빛 흰색으로 변하게 된다<사진 3-1>. 이 사진은 소장하고 있던 예니(Yeni)라는 두 병의 미니어처 라키 중 하나를 개봉하여 만든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현상에서 이 술의 유명한 별칭인 ‘사자의 젖(lion’s milk)’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우윳빛 술을 사자의 젖으로 멋들어지게 표현한데서 용맹하였던 옛 투르크족의 전사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사자의 젖’을 시각적으로 충분히 즐기기 위해서는 투명하면서도 길이가 긴 잔을 사용하면 보다 운치가 있다. 터키 현지인들은 라키를 보통 메제(meze)라고 부르는 안주거리들과 함께 즐긴다. 메제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가장 일반적인 것은 빵과 함께 서빙되는 멜론과 치즈이다.

두 번째 사진속의 미니어처 중 가장 오른쪽은 앞서 이야기한 예니 라키라는 제품(50ml)으로 사탕수수로 만든 주정이 20% 정도 포함되어 있다<사진 3-2>. 새로운 주정을 사용하였다는 의미에서 이름도 Yeni(new)라고 붙였는데, 현재 터키 내에서 가장 판매량이 높은 브랜드 중의 하나다. 알코올 농도는 45%로 은근히 높다. 라키는 현재 국내에서 수입되지 않아 미니어처도 터키 현지에서나 구할 수 있다. 사진의 왼쪽 미니어처들은 라키와 같은 성격의 지중해 연안 국가들 술이다. 왼쪽의 두 술은 각각 페르노(Pernot)와 리샤르(Ricart)라는 프랑스의 유명한 아니스 술인 파스티스 미니어처(30ml)들이다. 그리고 라키 바로 오른쪽의 술은 그리스 술로 우조(Ouzo)이다. 이들 술들은 앞서 언급한대로 모두 강한 아니스 향을 가지고 있으며 물을 섞으면 탁한 색깔로 바뀌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자 여러분, 언젠가 터키를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거리의 한 선술집에서 이 술이 주는 특유의 우윳빛 낭만과 강한 남성적 체취를 한번 느껴 보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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