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즈칼, 용설란으로 만든 증류주의 총칭

“외국에 나갔을 때 벌레가 들어 있는 ‘데킬라’를 보았는데 정말 특이하더구먼.” 어느 날 술자리에서 한 지인이 문득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강남 어느 술집에서 주인이 특별히 소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데킬라 속의 벌레를 맛볼 기회를 주는데 차마 먹기가….” 그 후 또 다른 술자리에서 한 후배가 한 말이다.
벌레가 들어있는 ‘데킬라’라니? 여러분은 혹시 이런 술을 보거나 직접 마셔 본 적이 있습니까? 정말 벌레가 들어있다면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이며, 이 벌레의 정확한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데킬라라는 술은 멕시코를 떠 올릴 때 언제나 연상되는 이른바 멕시코의 국민주다. 자욱한 먼지바람을 배경으로 황량한 붉은 지평선을 바라보며 한잔의 데킬라를 단숨에 마신 뒤, 거칠게 소금으로 독한 기운을 추스르는 광경이야 말로 멕시코를 상징하는 전형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데킬라를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용설란(agave)’이라는 멕시코의 재래 식물 중 특히 ‘blue agave’라는 종을 사용하여, 중부 멕시코 고원 하리스코(Jalisco)주에 있는 데킬라 지역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증류주를 말한다. 즉, 데킬라는 술 이름인 동시에 마을 이름이기도 한 셈이다.

데킬라는 16세기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당시 멕시코의 토착 용설란 발효주였던 풀케(pulque)를 증류하여 독한 술을 만들었던 것에서 유래하였으며, 이후 400여년간 멕시코 민중의 삶에 깊은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 데킬라와 비슷한 술에 ‘메즈칼(mezcal)’이라는 술이 있다(정확한 멕시코 발음으로는 ‘메쓰칼’이라고 부름). 실제 많은 사람들이 이 메즈칼을 데킬라의 일종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벌레가 들어있는 데킬라’의 정체도 사실은 데킬라가 아니라 바로 이 메즈칼이라는 술이다. 자, 그러면 두 술의 차이점을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메즈칼 역시 기본적으로는 멕시코에서 용설란으로 만들어지는 증류주라는 측면에서는 데킬라와 같다. 그러나 모든 데킬라는 메즈칼일 수 있지만 메즈칼은 결코 데킬라가 될 수가 없다.
즉,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메즈칼은 넓은 뜻에서 용설란으로 만든 증류주의 총칭이라면 데킬라는 이중 특별한 용설란으로 특별한 지역에서 생산한 것을 선택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메즈칼이란 용어를 사용할 때는 데킬라 보다 저급한 용설란 증류주를 뜻한다.

그러면 데킬라와 메즈칼의 차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그 차이는 ①멕시코에서 자생하는 136종의 용설란 중 데킬라는 ‘blue agave’라는 고급 용설란 한 종만을 사용하는데 비해 메즈칼은 espadin 품종 등 8종류의 용설란을 사용한다. ②데킬라는 blue agave의 주산지인 Jalisco주 데킬라 지역에서 생산되는데 비해 메즈칼은 대부분 Oaxana란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기타 내수용 제품이 Guerrero, Zacatecas, Durango 등의 지역에서 만들어진다. ③데킬라는 두 번 또는 일부 제품에서는 세 번까지 증류하는데 비해 메즈칼은 한번 증류한다. 다만 최근 고급 메즈칼 제품 중에는 두 번 증류하는 것도 있다. ④용설란을 굽는데 있어 데킬라는 스팀을 사용하는데 비해 메즈칼은 석탄 오븐을 사용한다. 이 때문에 메즈칼에서는 강한 훈제향이 느껴진다. ⑤메즈칼에는 구사노(gusano)라고 불리는 벌레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비해 데킬라는 절대 넣지 않는다. ⑥데킬라에 비해 메즈칼은 대량 생산된다.

앞서 말한 메즈칼의 벌레는 정확히는 용설란에 기생하는 나방의 애벌레을 말한다. 스페인어로 벌레를 구사노(gusano)라고 부르기 때문에 애벌레를 넣은 경우에는 술병에 ‘con gusano(with worm)’라고 표현하게 된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두 마리, 세 마리를 넣고 자랑스럽게 이를 홍보하는 제품들도 있다.
메즈칼에 용설란에 자생하는 나방의 애벌레를 넣게 된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①과거 술의 농도를 정확히 측정하지 못했던 시절에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애벌레를 넣어 만일 썩지 않고 잘 보관되면 술이 충분한 알코올 농도로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하였다는 설. ②용설란 처리 과정에서 실수로 묻혀 들어간 애벌레들이 결과적으로 메즈칼의 맛을 향상시킨다는 것을 관찰하면서 시작되었다는 설. ③일종의 정력 강장제 또는 남성 마초의식의 하나로 시작되었다는 설(이 경우에는 술병의 마지막을 비운 사람이 벌레까지 먹을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게 된다). ④완전히 상업적 유인책으로 시작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모든 이론이 그러하듯이 설이 많다는 것은 마땅한 정답도 없다는 뜻이 된다. 어쩌면 여기서 정답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부연하고 싶은 것은 메즈칼이라고 해서 모든 술에 다 애벌레를 넣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일부 고급제품들은 오히려 애벌레를 넣는 것을 저급한 품질을 숨기려는 상업적 술책으로 격하하면서 의도적으로 데킬라와 같이 애벌레와 무관한 제품을 만들기도 한다.

왼쪽 사진의 미니어처 제품은 “Oro de Oxaca”(옥사카의 황금)이란 메즈칼이다. 50ml 용량으로 사진에서는 상표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미니어처 실물 구사노도 들어 있다. 상표에 메즈칼이라고 뚜렷이 쓰여 있는 것이 잘 보이고 있다. 병목에 달려 있는 주머니는 소금과 구사노 분말을 혼합하여 만든 일종의 전통 안주 주머니이다.
오른쪽 사진 역시 50ml 미니어처로 구사노를 잘 보여주고 있는 “El senario”라는 제품이다. 사진을 찍기 위해 병을 적당히 흔들어 주었더니 구사노가 사진과 같이 정중앙에 곧추세워진 모습으로 멋들어지게(?) 보이고 있다. 자 여러분, 이제 ‘메즈칼과 구사노’라는 술에 관련된 전문용어(?)도 배웠는데 내친 김에 메즈칼 한 잔에 애벌레도 한번 먹어 보는 경험을 가져 보지 않겠습니까(이 술은 아직 국내에는 정식으로 수입되고 있지는 못하고 미군 PX를 통해 나온 ‘Monte Alban’이라는 제품이 시중에 가끔 보일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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