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의사들, 진료수위 비용효과와 타협적 진료 시도

닥터G 케이스, 진료 가이드라인이 오진으로 이끌어

진료비용, 법정서 인정되지 않는것 의사들은 알아야

▲ 김일훈 박사
在美 내과 전문의, 의사평론가

위암을 잘 모르는 미국의사

위암 왕국 일본에서는 40세가 되면 아무런 증상이 없어도 집단검진 또는 개별검진(개원의에 의한 내시경)대상자가 되고, 물론 진료비도 보험커버도 보장된다.

한국암학회의 위암검진 가이드라인에서도 40세 이상의 남녀에게 2년마다 검진 받도록 추천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20세기 초반 암발생률 1위였던 위암이 차츰 백인사회에서 소멸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위암을 염려하는 중년 한국계 환자가 내시경진료를 받는데 어려움을 겪을 정도다.

미국 3대 암의 하나인 대장암에 대해서는 개원의들이 진료가이드라인에 따라 50세를 지난 모든 환자에게 무조건 대장경검사를 권유하고 있다. 그러나 케이스가 극히 적은 위암에 대해서는 경험이 전혀 없는 의사들이 많기 때문에 미국에서 위암진단을 놓치는 일이 더러 있다. 필자는 중년이상의 교포ㆍ친지에게 가급적이면 교포의사를 찾아 위내시경을 받으라고 충고해 준다.

위장장애 증상을 호소하는 젊은 환자의 위암진단을 실수하여 환자를 사망케 한 의료과오 때문에 제소된 닥터 G의 케이스를 여기에 소개해 본다.

45세 백인남자 M은 지난 15개월간 복부팽만감과 구역질 그리고 트림과 상부복통 등 증상이 있고 최근에 피 섞인 대변을 본적이 몇 번 있어 가정의인 닥터 G를 찾았다. 6개월간 제산제 등 약물치료를 받았으나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이때 처음 X선-위촬영을 했는데 ‘정상’이라고 판독되었다. 몇 달이 지난 뒤(초진부터 약 1년 후)에야 닥터 G는 환자를 위장내과전문의에게 의뢰하여 내시경검사를 받게 했다. 위내시경 결과 위의 상부에 큰 종양이 발견되어 ‘샘암종(adenocarcinoma)’위암으로 진단되었다. 환자는 곧 위 절제수술을 받았으며, 수술 후는 계속 튜브영양급식에 의존하게 되었고, 그사이 1년간 두 코스의 화학요법과 방사선치료를 받았다. 그러다가 3년이 지나 암이 뇌로 전이돼 반신불수가 되었으며, 얼마 후 처와 자녀를 남기고 사망했다. 유족은 변호사의 권유에 따라 닥터 G와 병원방사선의사 그리고 병원을 상대로 ‘진료태만’과 ‘저질의료’라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병원의 방사선과의사와 함께 병원을 소송하는 근거는 Respondeat Superior(let the master answer의 라틴어)이론, 즉 고용인의 과오행위는 고용주도 책임을 져야한다는 원칙에 의해서다. 원고는 병원이라는 큰 덩치를 상대로 거액을 뜯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진으로 이끈 가이드라인

미국엔 위암에 관한 진료가이드라인이 없다. 애써 찾아보면 ‘여러 가지 암에 대한 가이드라인’ 속에 ‘위암의심환자의 전문의 의뢰 가이드라인’이란 것이 있으며,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

△미국서 위암은 극히 드물어 연 발생 1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위암환자의 90%이상은 55세 이상이다. △55세 이하환자가 소화불량 등 위장증상이 있을 경우, 위암진단 가능성은 100만 명당 1명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비용효과’(cost effectiveness)를 위해서는 증상이 있어도, 55세가 넘은 환자에게만 정밀검진을 위해 전문의 의뢰를 고려해야 한다.

어리석은 닥터 G를 큰 실수로 이끈 이유는 진료 가이드라인을 성서처럼 받드는 의료행위 때문이었다.

정치가와 의료비를 지출하는 당사자인 직장고용주와 보험회사는 가장 값싼 진료만 원하고, 그들이 양보한 선은 기껏 ‘비용효과’와 타협적인 진료라 하겠다.

미국에서 관리의료형태의 민간보험 중에서 보험료가 가장 저렴한 HMO(Health Maintenance Organ ization)보험소유자(환자)의 주치의(일차의료의사)는 보험사에서 지정해 주고, 환자의 전문의에게 진료의뢰를 하거나 고도의 검사는 전적으로 주치의판단에 의해 결정한다. 여기에 비해 같은 관리의료보험에서 보험료가 높은 PPO(Preferred Provider Organi zation)보험소유자는 자의로 아무 의사나 전문의를 찾아 진료를 받을 수 있다.

싸구려보험인 HMO 환자를 많이 보아 온 닥터 G는 이 젊은 환자에 대해 큰 비용이 드는 위장내과전문의 진료의뢰를 마지막 순간까지 보류함으로써 가이드라인에 충실했을 뿐 아니라, 의료비를 절감하는 의사에게 가장 큰 크레디트를 주는 HMO측에 환심을 사려했던 것이다. 이 환자는 처음부터 오진이 많은 X선-위촬영 대신 내시경을 고려했어야 했다. 위장내과전문의에 의뢰하면 내시경비용을 합해 총 의료비가 2000~3000 달러 이상 소요된다. 닥터 G는 비용이 저렴한 X선-촬영(약 300 달러)으로 비용효과와 타협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방사선의사들 말에 의하면 X선-위촬영은 내시경보급 후 전적으로 없어졌고, 최근 두름수술(bypass surgery)을 받은 비만환자의 경과추적에나 이용될 정도라고 한다.

아는 사실이지만, 의료소송에서 환자와 원고변호사는 비용금액에 관계없이 완벽한 진료만을 기대한다. 여기서 중간 틈에 낀 의사들은 보험회사의 눈치를 보아가며 자기들 진료수위를 진료가이드라인대로 비용효과와 타협하려 든다. 닥터 G의 의료행위도 그러했던 것이다.

하지만 의료소송에서 보험사는 일차의료의사들에게 좋은 진료자료만을 법정에 제공해 주기를 바라고, 반면 배심원과 재판관은 조속한 전문의진료의뢰를 자주하는 것이 올바른 진료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의뢰가이드라인은 일차의사의 진료가 실패했거나, 특수한 일이 있을 경우에 한해서만 위장내과전문의 의뢰를 하도록 하고 있다. 의료계의 진료지표라 할 가이드라인은 표면상 공인된 의학문헌을 토대로 작성됐다지만, 많은 경우 의료비 절약이라는 동기가 내포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진료비용이라는 말은 법정에서 전혀 인정되지 않는 용어라는 것을 의사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법정에서 “의사는 비용에 구애받지 않고 최고ㆍ최상의 진료를 시술하는 자”라는 전제하에 재판하기 때문이다.

 

배심원의 판결

재판에서 원고측 증인인 암전문의는 “만일 방사선 촬영 당시 위암진단이 되어 치료를 시작했더라면 환자는 죽지 않고 오랫동안 보람 있는 여생을 누릴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원고증인으로 나온 방사선전문의는 법정에서 배심원에게 필름소견을 공개하고 붉은 펜으로 암 부위를 마크하면서, 음성을 높여 “바로 이것을 실수했다”고 증언했다.

여기에서 특기할 일은 X선 필름의 암 소견에 그은 붉은 연필마크의 마력이라 하겠다. 이 적색마크가 배심원들에게 피고의사의 명백한 과오를 알리고, 그들로 하여금 “우리에게도 이상하게 보여 질 정도다”라는 환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병원(피고)증인으로 채용된 외부방사선의사의 말은 병원방사선과의 진단 실수를 인정하면서, X선-위촬영 당시 이미 암이 진행된 상태여서 치료해도 소용없었을 것이라 설명하고 “오진이 환자사망에 직접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다”라고 진술하며 병원을 변호했다.

재판은 예상대로 원고승소로 끝났고 220만 달러 배상금 지불 판결에서, 62%는 병원과 방사선의사 그리고 38%는 닥터 G에게 책임을 지웠다. 220만 달러의 내역을 보면 100만 달러는 피고의 진료과오와 75만 달러는 진료태만으로 인한 환자사망에 대한 보상액이고, 나머지 45만 달러는 배우자 상실에 대한 위로금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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