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규 교수
- 고려의대 신장내과

- 의사평론가

 “글쎄요. 이공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걱정입니다.” 얼마 전 만났던 약대 교수의 말이다. 약대는 2009년도부터 ‘2+4’제도로 넘어간단다. 일반 대학 2년을 수료해야 약대에 진학할 수 있게 된다. 약대는 의대나 치대처럼 전문대학원제도가 아니므로 약대 4년을 졸업해도 학위에는 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들어가기만 어렵게 되었다.

 올해 대학입시에서 이공계, 특히 생물계통의 이과계 지원생 중 많은 학생들이 의학전문대학원이나 치학전문대학원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의치학대학원은 ‘4+4’제도를 택하고 있어 일반대학을 졸업한 후에야 지망을 할 수가 있다. 그러니 대학을 다니는 동안은 해당 전공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의치학전문대학원을 지원하려면 학부 성적이 중요하므로 이공계를 다니는 동안은 열심히 해야 한다.

 그런데 약대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2+4제도 하에서 2에 해당하는 대학 1, 2학년에는 대부분 교양과목과 전공선택과목을 이수하게 된다. 필수전공에 해당하는 과목이 적으므로 자신의 전공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약대 입학에서도 의치학전문대학원처럼 MEET나 DEET에 해당하는 약학입문시험을 볼지는 모르겠으나 학생선발에서 학부 때의 성적은 역시 중요한 선발기준이 될 것이다.

 즉, 약대의 경우는 1, 2학년까지의 성적만 선발기준이 된다는 말이다. 이공계 2학년을 마치고 약대를 지원한 학생이 제때에 합격하지 못하면 3학년으로 진급하지만 3학년 때 배우는 전공필수에는 소홀해 질 가능성이 많아진다. 학년은 올라가도 공부는 1, 2학년 공부만 되풀이하는 이상한 형태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이공계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학부에서 의대, 치대와 약대가 없어지면서 우수한 학생을 의치학전문대학원으로 빼앗길 것을 우려한 일부대학에서는 본교 이공계출신이 본교의 약대나 의치학대학원에 지원할 경우 전형에서 혜택이 있는 것 같은 암시를 하고 있어 혼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아직 모든 의대, 치대가 전문대학원으로 전환된 것은 아니다. 치대는 2009년부터 치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되며, 의대는 현재 41개 대학 중 27개 대학이 입학정원의 일부 또는 전체가 전환되었다. 매년 의대에 입학하는 3600여명의 학생 중 약 700여명이 전문대학원으로 입학하고 있으며, 2009년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문제는 서울대나 고려대, 연세대와 같은 전통적인 대학들이 입학정원의 50%만 전문대학원으로 뽑아 의과대학으로 들어온 학생과 전문대학원으로 들어온 학생이 같은 학교, 같은 건물에서 같은 교수들로부터 강의를 듣게 된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학부생들과 전문대학원생들 간의 갈등과 혼돈은 이미 시행을 경험하였던 학교들에서 생생히 나타나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대학원으로 전환하지 않은 의과대학들이 있다는 것이다. 전문대학원은 수업연한이 길뿐만이 아니라 등록금이 기존 의과대학의 거의 두 배나 되어서 6년제 의과대학에 비해 좋은 점이 없다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어차피 의사를 목표로 입학한 학생 입장에서는 전문대학원이 6년제 의과대학에 비해 나을 것이 없다는 말이다.

 앞으로 6년제 의과대학을 고수하고 있는 학교가 웃을 지,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을 결정 한 학교가 웃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공계는 이래저래 새로운 어려움에 처할 것 같다. 기회만 있으면 이공계를 살려야 한다고 하고, ‘과학입국’을 주창하는 정부가 다른 한편으로는 이공계의 등에 비수를 꽂고 있는 꼴이다. 앞으로 이공계는 신입생을 받아 열심히 가르쳐도 결국 약대나 의치학대학원에 우수한 학생들을 빼앗겨 남는 것이 별로 없는 노마진 이공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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