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규 교수
- 고려의대 신장내과

- 의사평론가

 작년 연말에 노무현 대통령이 ‘꿀릴 것은 부동산 정책뿐이다’라는 이야기를 한 일이 있다. 웬만해서는 꿀리기(?)를 죽도록 싫어하고, 꿀리면서도 꿀린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그의 스타일로 보아 꿀린다는 것을 인정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헌법보다 고치기 어려운 부동산정책을 산더미처럼 만들고 한번 맞아보라는 세금 폭탄을 무차별로 쏟아내고도 결과적으로 꿀리고 만 것이다. 다른 것은 다 ‘깽판’ 쳐도 북핵문제만 잘 되면 된다던 그의 결심이 나라 전체가 깽판 나고도 북한문제는 핵폭탄실험으로 깽판쳐서 돌아온 것을 아는 국민들이다. 새해에는 부동산문제에만 전념하겠다는 그의 결심을 듣고 이미 ‘꿀린’ 부동산문제가 드디어 ‘깽판’까지 가는 것이 아닌가 하여 얼마나 놀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얼마 전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분을 만나 정부의 부동산정책(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아파트 값 정책)이 자꾸 실패하는 이유를 물었다. 여러 가지 설명을 하였지만 핵심은 “정부가 대중인기영합(포퓰리즘)적인 정책에 집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주택을 공급하는 주체는 건설회사인데 건설회사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소비자의 입장만 강조하는 정책을 내어놓으니 결과적으로 시장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반값 아파트이든, 후분양제이든 정상적인 주택시장이 작동되지 않으면 새로운 편법과 왜곡을 불러와서 왜곡된 기간만큼 서민들의 내집 마련의 기회가 더 멀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건설업체는 비영리기관이 아니라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회사이므로 정부가 어떠한 아파트 정책을 내어놓더라도 업체는 손해를 볼 수도 없거니와 손해를 볼 일은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는 담뱃값 인상이 어려워지자 새해 들어 약값인하에 목을 걸 모양이다. 국내제약회사 육성과 외국계 제약회사의 횡포를 막는다는 것이 이유지만, 건강보험재정의 악화가 원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사실 건강보험재정의 악화는 정부가 만든 것이다. 입원환자의 식대급여 확대 같이 의료의 본질과 관련이 없는 것들까지 ‘보장성 강화’라는 인기영합정책으로 급여를 확대하면서도 의료보험료는 그에 미치지 못하게 인상을 하니 적자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의료보험과 관련된 정부정책의 문제점을 여기서 모두 지적할 생각은 없지만 의료를 제공하는 주체인 병의원이나, 약을 생산하는 제약업계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소비자의 입장만 생각해온 의료포퓰리즘의 폐해가 의료를 심하게 왜곡시키고 있는 현실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건실한 건설업계의 발전 없이 아파트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듯이, 의약계의 발전 없이 의료보험제도가 제대로 유지될 수는 없는 것이다.

 새해에 정부의 의료보험정책이라는 것을 보면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의료보험은 ‘꿀리지’ 도 않았고 ‘깽판’치지도 않아서 대통령의 관심 밖에 있다는 점이다. 혹시라도 의료보험마저도 꿀리고 그래서 다른 것은 다 깽판치더라도 의료보험만큼은 확실히 챙기겠다는 대통령의 관심이 있었다면 어떻게 될까하여 아찔하기조차 하다. 우리는 지금 ‘꿀리지’ 않으려는 정부와 ‘깽판’에 올인하는 대통령과 함께 살고 있다.

 꿀리는 것과 깽판 사이에서 생존해야 하는 의료계와 그 폐해를 나눠져야 할 국민들은 오늘도 하루를 힘들게 살고 있다는 것을 높으신 분들은 알고나 계시는지 모르겠다.

저작권자 © 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