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규 교수
- 고려의대 신장내과

- 의사평론가

 병원에서 응급실만큼 탈이 많은 곳이 없다. 인턴 때 응급실 근무를 해온 의사들은 응급실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드나드는 사람도 많고, 간섭하는 사람도 많은 곳이 응급실이다. 더군다나 응급실을 한번이라도 이용해본 환자나 환자의 보호자들도 응급실에 대한 감정이 의사보다 나쁘면 나빴지 좋을 리가 없을 것이다. 지나간 일이지만 내가 근무하는 대학의 총장을 지내고 국무총리까지 역임하신 김某 선생님이 임종 전에 상태가 갑자기 나빠져서 고대병원 응급실에 실려 오셨는데 때마침 응급실에 빈 베드가 없어서 들것에 실린 채 응급실 바닥에서 심폐소생술을 한 일이 있다. 자신이 총장을 지내고 국무총리와 적십자사 총재 등 사회의 존경받는 요직을 다 거치신 분이 모교 병원 응급실에서 받는 대접이 이러하니 일반인들의 서운함이야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새로운 복지부장관이 모 국립병원을 방문하고 국가응급진료체계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를 한 모양이다. 비단 이번 장관뿐만이 아니라 역대 어느 정권, 어느 복지부 장관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각 지역마다 응급의료센터를 짓는데 정부에서 많은 예산을 지원하고 정기적으로 전국의 응급실을 평가하여 그 결과에 따라 지원금을 차등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지원이 가능한 것은 교통위반범칙금의 일부를 '응급의료기금'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곧 이 기금이 없어질 모양이다. 정부는 지난 16일 2007년부터 응급의료기금을 폐지한다고 결정하였다. 기금을 없애는 이유야 잘 모르겠지만 기금의 종류가 너무 많아서 관리하는데 어려움이 있어서라고 들린다. 그러니까 정부 한쪽에서는 응급의료기금을 없애겠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응급의료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하겠다고 하는 모양이다.

 이런 헷갈리는 일이 또 있다. 응급실에 대한 평가기준과 정부의 지원이다. 응급실에 대한 지원의 대부분은 응급센터를 건축하는데 쓰이고, 평가는 주로 응급실의 인력과 장비에 관한 것이다. 그러니까 응급실을 넓히고 응급실에 사람과 장비를 늘리면 응급환자문제가 해결된다는 발상이다.

 그런데 현장에서 보는 응급환자의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병원에서 응급실은 외래와 마찬가지로 환자가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오는 방법의 하나이다. 응급환자의 처리능력은 응급실의 넓이와 응급실의 장비, 인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입원실, 중환자실과 같이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는 여유 병상이 있느냐와 응급수술이 24시간 가능한가에 달려있다. 응급실에 항상 환자가 차고 넘치는 이유는 응급환자를 제때에 입원시킬 수 있는 병실이 부족해서이고,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야간 수술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야간에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해당과의 전문의가 밤에도 나와서 수술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의 수술수가로써는 모든 진료과에서 밤에도 수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수의 전문의를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응급실에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있고, CT나 검사장비가 있어야 한다는 현재의 응급실 평가기준은 의료현실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기준이라는 생각이다. 응급실이 사람을 잡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응급의료에 관한 그릇된 인식과 정책이 사람을 잡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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