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규 교수
- 고려의대 신장내과

- 의사평론가

 기업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정부의 지원이 시작되는 분야가 있으면 그 사업에서는 철수하는 것이 좋다'는 속설이 있다. 정부의 지원에는 꼬리표가 따라다니고, 이 꼬리표가 결국은 몸통을 망치고 만다는 그들만의 오랜 경험을 통해 체험적으로 터득한 결과이다.

 저출산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정부의 각 부처마다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너무 많은 대책을 내놓아서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그 대책 뒤에 붙어 있는 예산액을 보면 천문학적 숫자여서 이제 다시 출산율이 늘어나고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기대를 갖게 한다. 바야흐로 대통령의 말처럼 아기를 낳기만 하면 나머지는 정부가 알아서 해주는 시대가 올 것 같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새로운 출산장려대책 중에는 직장에서 여성이 출산을 하면 출산휴가 3개월은 물론이고 임신휴가를 새로 신설하며 필요하면 남자에게도 출산휴가를 인정한다는 것이 있다. 그러나 현재 근로여성 중에 출산휴가로 3개월을 온전히 쓸 수 있는 여성 근로자가 과연 전체 여성근로자 중 몇 퍼센트나 될까.

 정년이 보장되고 경쟁이 없는 공무원이나 교사라면 모를까 경쟁이 치열한 일반 직장에서 3개월 휴가는 경쟁에서 뒤쳐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쟁과 실적에서의 탈락은 당장은 아니겠지만 조만간 있을 수 있는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다는 것쯤은 누구나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지금도 대부분의 회사원들은 늦은 밤까지 일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야근을 해가며 탈락하지 않기 위하여 안간 힘을 쓰고 있는데 부인이 출산을 하였으니 나도 출산휴가를 가겠다고 말할 수 있는 배짱 좋은 남자직원이 우리나라에서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최근 들어 각 기업체마다 여자 직원의 채용을 늘리고 있다. 그 만큼 우리나라 여성인력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상장기업 임원 중 여자임원의 비율은 입사당시의 여자직원 비율만큼 높지가 않다. 기업은 경쟁을 통해 승진을 결정하고 높은 위치일수록 경쟁은 더욱 치열해 진다. 임신과 출산으로 법정휴가를 모두 쓰고 집에 아기가 있기 때문에 정시에 퇴근할 수밖에 없는 여자직원에게 승진 시 특별히 가산점을 주지 않는 한 그들이 공정한(?) 경쟁에서 살아남기가 그리 만만치 않을 것 이라는 것은 추측하기가 어렵지 않다.

 복지부는 소아 진료비 중 본인부담률을 낮추고 산부인과 진료에서도 출산에 관한 본인부담을 대폭 낮추어 여성들의 출산율을 늘리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소아과나 산부인과의 전공의 지원자가 줄고 있는 것은 저출산의 결과로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현재 개원중인 산부인과 개원의조차도 분만환자 받기를 꺼려하고, 대학병원의 분만실과 신생아실은 지금도 텅텅 비어 있다. 그렇다면 소아환자와 분만환자에 대한 정부의 진료비 감면이 환자에게 정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하여 태어날 때부터 여자가 적은데다 결혼하려는 여성이 줄고 있고, 결혼을 하여도 임신을 하려고 하지 않으며, 출산을 계획해도 1명 이상의 아기를 갖지 않으려는 여성들에게 복지부의 이러한 진료비 감면 혜택이 출산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출산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국민들의 세금부담이나 늘리고, 출산여성들에게는 별 혜택이 없으면서 또 공무원 수나 늘어나는 것으로 끝나지 않기를 이번만은 정말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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