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규 교수
- 고려의대 신장내과

- 의사평론가

 외국의 학술잡지를 보다보면 재향군인병원에서 발표되는 논문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연수를 다녀온 의사들 중에서도 재향군인병원에서 연구를 하고 돌아온 교수들을 간혹 만날 수 있다. 재향군인병원이란 우리나라에는 없는 미국의 제도이다. 퇴역한 군인이나 군속들을 위한 병원이 재향군인병원이기는 하지만 장기요양을 요하는 현역군인도 입원과 외래치료를 받을 수 있다. 재향군인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는 진료뿐만이 아니라 연구·교육에서도 국가와 병원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는다. 대학병원의 교수가 재향병원 의사를 겸직하는 수도 있고, 아예 병원자체가 대학부속병원으로 되어있으며, 또는 대학병원과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대학병원은 아니지만 대학과 긴밀한 협력관계로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아산중앙병원이나 삼성서울병원과 비슷한 형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 나라들에 군병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군병원은 이동외과병원수준으로 우리나라 용산에 있는 미8군의 121병원처럼 병상수가 500병상을 넘지 않고 인력이나 시설이 민간병원에 비하여서는 뒤진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다른 나라들은 대학병원수준의 군병원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군병원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좋은 의료 인력이 오래 근무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직된 인사체계와 낮은 보수 그리고 연구나 교육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이 좋은 의사를 불러 모으지 못하는 원인들이다. 의사 또한 의사마다 추구하는 목표가 다르므로 어떤 의사는 자유로운 근무환경을, 어떤 사람은 높은 보수를, 어떤 사람은 연구를 할 수 있는 실험여건이 좋은 병원을 그리고 어떤 의사는 좋은 제자를 길러내는 것을 보람으로 삼을 수 있다. 병원이 화려하고 의료장비가 훌륭하다고 그것만으로 좋은 의사를 붙들어 둘 수 없는 이유이다. 미국이 대학병원과 같은 군병원을 갖기보다는 대학병원을 군이 같이 쓰는 방법을 택한 것도 오랜 고심 끝에 얻은 결론일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군병원 환경은 열악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대학병원과 같은 민간병원의 발전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발전이 더딘 것은 그 동안 군병원에 대한 정부나 국민들의 인식부족 탓이다. '군인이 병이 생기면 제대를 시키면 되니까 군병원에 투자해서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라도 정부가 우리나라의 국력과 의료수준에 맞는 군병원을 만들겠다고 결정한 것은 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현역군인은 군병원에, 퇴역군인 중 일부는 보훈병원'이라는 식의 부처중심 의료체계보다는 이제는 환자가 의료기관을 선택할 수 있는 환자중심의 의료체계로 전환할 시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한때 한국전력회사에서 운영하던 한전병원은 이미 한일병원으로, 철도청에서 운영하던 철도병원이 중앙대에 위탁운영 되고 있는 것이 변화의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이런 뜻에서 아직도 경찰청 소속으로 되어있는 경찰병원이나 보험공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일산 건강보험공단병원 그리고 노동부 산하의 산재의료원과 같이 정부 각 부처가 가지고 있는 병원의 미래투자에서 병원에 대한 투자보다는 환자에 대한 지원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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