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 기피 전자미디어 인간의 지성 격하
독서, 정신·신체 에너지 요구 노인에 제격

▲ 김일훈 박사
- 在美 내과 전문의
- 의사평론가
■ 잘못 자란 東道

 동양선비가 자랑하는 독서인의 글공부는 옛날부터 벼슬과 돈벌이를 위한 하나의 방편이 되어왔음을 부정할 수없다.

 옛날의 과거(科擧)와 현대의 고시(高試) 그리고 면허증취득을 위한 글공부가 바로 그것이다.

 상류귀족층에 속하지 않은 사람도, 어려운 글들을 외우고 과거시험에 합격하면 그만한 보람이 있어 사대부(士大夫)라는 존엄성을 갖춘 지배계급이 된다.

 그렇게 되는 날에는 부귀영화가 절로 굴러들어오게 되기 마련이다.

 유교사회에서의 글공부는 신분과 경제적 위상을 높이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1천년이전 송(宋)나라 때 이미 이러한 사실을 알리는 시(詩)가 있으니, 다음과 같다.

 "부자가 되려고 논밭을 살 필요가 없다.

 책 속에서 저절로 천석 쌀가마가 나오리다.

 고대광실 높은 집을 지을 필요가 없다.

 책 속에서 저절로 황금집이 튀어나오리다.

 외출할 때 동반자 없다고 불평하지 말라.

 책 속에서 차마(車馬)가 계속 나오리다.

 대장부로 태어나서 보람 있는 인물이 되려는 자여,

 고생을 사서 창문을 향해 경서(經書)를 읽을지어다."

 이 시를 현대어로 의역해 보면, "글공부 열심히 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시험에 통과하야 지위 높은 사회명사가 되어 정경유착에 동반자 되는 날에는, 부귀영화가 절로 글러들어오리다."

 옛적과 근대엔 글공부로 지배계급이 되는 길이 열려있어, 독서가 출세도구역할도 했다는 사실이 유교가 남긴 크나큰 오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근래의 총칼이나 홍위병을 앞세운 쿠데타로 등장한 주체세력에 비하면, 출세수단치고는 어려운 길이었다고 하겠다.

 지금은 글공부로 전문직 기술진의 높은 자격을 얻어 사회에 공헌하는 대가로 좋은 수입과 대우를 받는다는 점에서, 선비정신이 승화하여 현대적전문직으로 발전했다고 좋게 풀이해본다.

 그러나 여기서 진짜 글공부는 여가선용과 취미로 하는 교양적인 독서를 말하고자하며, 이러한 독서가 나와 같은 노년기인생에서 가장 바람직한 도락이 되기를 바란다.

 숨 가쁜 생활전선에서 교양적인 글공부에 열중했던 은퇴전의 인생을 "한손에 막대(東道=독서)잡고 또 한손에 가위(西器=기술)잡은" 기간이라 한다면, 노년기독서는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황혼기에 도전하는 인생의 즐거움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노인상은 마치 머리 숙인 벼처럼, 원숙하고 겸허하게 자기생애를 거두려는 모습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만족해본다.

■ 전자미디어문화에 밀리는 활자문화

 여태껏 인류문화는 독서를 주축으로 한 활자문화였다.

 그러나 20세기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텔레비전과 컴퓨터 등 전자미디어가 보급됨에 따라, 차츰 활자문화는 이러한 전자문화에 밀려서 위축되어가고 있다.

 어린 학생들은 책읽기 대신 컴퓨터게임에만 열중하는 '게임보이시대'가 되었고, 학부모와 언론은 운동부족으로 오는 체중과다와 건강문제를 염려하고 있다.

 독서로 깊은 인생사를 배우고 사색해야 할 학생시절이, 얍삽한 미디어지식으로 대치되는 시기로 변모된다면 그만큼 인간의 지성이 격하될 것이다.

 오래전 한국에서 아동들의 닌텐도게임이 간질병을 유발한다는 뉴스 때문에 부모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고 들었다.

 여기대해 이어령 씨는 뜻 깊은 논평을 한바 있음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전자미디어에 장기간 노출됨으로서 한국부모들이 걱정하는 간질병에 걸릴 확률은 많아야 백만 명에 1명에 불과하며, 현재 게임보이세대 100%는 '활자기피증'과 '反독서병'에 걸려있다는 사실을 그는 지적했다.

 또한 이어령씨는 로마제국이 멸망한 원인은 납으로 된 그릇을 썼기 때문이라고 한 사학자 말을 인용하며, 대제국을 멸망시킨 눈에 보이지 않는 만성납중독처럼 '反독서병'이 서서히 인류의 사고와 행동을 위축시켜 멸망의 길로 가게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참으로 공감이 가는 평이다.

 술과 담배의 過소모국으로 세계의 선두를 달리는 한국에서, 통계에 나타난 도서구입비는 '선비나라'의 체모도 없이 선진국의 말단을 차지한다니 너무나 한심하다.

 바른말하기로 소문난 저술가 K목사는 "한국기독교인은 독서를 멀리하는 것이 특징이다"고 말했는데, 아마도 성경만 읽는다는 암시일 것이다.

 여러 결점을 지닌 유교에서도 글 읽고 사색하는 독서인을 받드는 '선비정신'만은 우리가 되살려야 할 일이다.

 일본 동경의 책방거리(神保町)는 몇 불럭을 차지하고, 하루 종일 산책해도 지루하지 않다.

 시카고나 뉴욕 일본서점에선 줄을 지어 책을 구매하는데, 한국서점들은 한산하기만하고 비디오대절로 현상유지한다는 말을 듣고 있다.

 전자미디어문화가 진시황처럼 활자문화를 소멸시키고 그 결과 물질문명만 남고 정신문명이 사라져버릴까 두렵지만, 기우(杞憂)이기를 바랄뿐이다.

 빨랑빨랑 속도를 좋아하는 한국에서 신문한쪽 읽거나 인터넷에서 얻은 짧은 지식으로 아는 척 지껄이는 현대인이 늘어난다면 그것은 망국으로 가는 길이고, 이럴 때일수록 꾸준히 독서하며 사색하는 조용한 옛 선비가 그리워진다.

 자랑스럽게도 활자문화의 시조는 우리 한국조상이시다.

 1972년 유네스코는 지금 파리의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있는 불경책(直視心經)이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이라고 공표했으니, '구텐베르그'보다 70년이 앞선 1377년 '고려'시대작품이다.

 천박한 물질문명과 일맥상통하는 '전자미디어' 문화를 우리는 이용하되, 우리의 정신과 지성을 키워주는 '활자문화'를 지키는 일이야 말로 현대독서인의 책무라 하겠다.

 독서를 통한 활자문화창달에는 정신적 에너지가 다량 소요되고, 여기엔 우리의 노력이라는 육체적 에너지가 수반돼야한다.

 그런 점에서 1장에서 좌력(座力)과 타협한 나의 안락의자와 다리 잘린 컴퓨터책상을 자랑해봤고, 이어서 동도(東道)생활에 전념할 수 있는 우리 노년기인생을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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