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읽을수록 마음의 양식 쌓는것
생활안정 의사들 노후 독서가 제격

▲ 김일훈 박사
- 在美 내과 전문의
- 의사평론가
■ 東道西器

 현대의 우리 동양지식인은 동도서기(東道西器)라는 말을 쓰기 좋아하고, 이를 이상으로 삼고자한다.

 허영 있는 나처럼 머리는 원대한 곳에 두되, 생활을 위해 안정된 직종(의사 등)을 택한 사람이 신봉하는 용어가 '동도서기'이다.

 성경에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에서 '말씀'의 희랍어는 로고스(Logos. 神)며, 이를 중국성경에서는 도(道)라 번역했다.

 동도(東道)는 최고최상의 정신적인 것(道)은 그 가치와 비중에 있어 동양이 월등하고, 반면 서기(西器)는 기술과 물질적인 문화의 이기(利器)는 서양이 앞선다는 말이다.

 나의 경우를 예로 들어, 내 머리는 道에 치중해서 자칭 독서인으로 행세하고, 내 기술은 西器에 의존하여 의사로서 일하는 내가 바라는 모습의 총칭이 '동도서기'이다.

 그리고 사전에 나온 '독서인' 풀이는 다음과 같다.

 A - 독서를 좋아하고 자주 읽는 사람.

 B - 중국서 과거(科擧)로 관(官. 벼슬)자격을 얻은 자, 또는 그 집안계층, 사대부(士大夫), 지식인과 학자.

 요즘의 독서인은 쉽게 말해서 A에 속할 것이다.

 그러니 직업에 관계없이 독서취미가 있으면 누구나 독서인이 될 수 있다.

 나도 그중 한사람이라 생각해보지만, 내가 글쓰는 문필가라고 여겨본 적은 없다.

 그 이유는 내가 쓴 굴이나 책내용은 내 취미생활의 소산물이고 밥벌이와는 전혀 무관하기 때문이다.

 독자에 어필하는 상업적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권위 있는 학문적인 글이 아니고 보면 독자에게 꼭 필요한 글도 아니다.

 그런대도 나는 어릴 적부터의 취미인 책읽기에 더해서 지난 10년간 즉 50대 후반에는 문필가행세도 해보려고 노력해왔다.

 쓴다는 일은 읽는 것과 달라 쉽고 즐거운 일만은 아니고, 짜증나고 골치 아픈 일이기도 하나, 그래도 짧은 글이라도 쓰고 나면 보람을 느끼는 재미로 계속 쓴다.

 논어에 "일하고난 뒤 여력(餘力)이 있으면 글을 배우라"고 한 말씀이 나에게 용기를 준다.

 은퇴전만 해도 내 전공인 의학을 생활도구로서의 일이라고만 여겼지, 독서처럼 유유자적한 학문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결코 없었다.

 그래서 내가 부러워하는 사람들처럼 취미와 직업(의학)을 내 생활화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위의 '논어'말씀은 나의 독서취미에 영합하는 격언으로 들린다.

 일하고난 뒤에 여력이 전혀 없을 때도 있다.

 아시다시피 의사란 직업은 옛 조선시대엔 중인(中人)이라 일컬어 양반이나 선비가 하는 고상한 직업이 아니었으며, 지금 미국에서는 가장 스트레스 많이 받는 직업의 하나이다.

■ 心勞하는 독서인

 중국고전에 "君子는 심로(心勞)하고 小人은 역로(力勞)한다"고 했듯이 유교체제하에서 독서인은 마당청소도 않았다.

 즉 선비는 지식적인 일을 하고 하인은 노동일을 한다고 했는데, 지금 의사직업은 지식과 노동을 합친, 말하자면 육체적 - 정신적 노동자의 범주에 속한다.

 두뇌를 항상 긴장시켜 의학학문을 활용해야하고, 육체적으로 동분서주해야하는 중노동자나 다름없다고 하겠다.

 이렇듯 하루 종일 일에 지치고 나면 머리와 다리가 무거워지는 직업이 의사이다.

 그런 점에서 다음 찬송가처럼 아침부터 열심히 일하고서, 밤이 오거나 숙직 없는 주말이 기다려지고 그때 가서 읽고 싶어서 쌓여둔 책과 대면하게 되는 즐거움이 있다.

 < 어둔 밤 쉬되리니 네 직분 지켜서, 찬이슬 맺힐 때에 즉시 일어나 해 돋는 아침부터 힘써서 일하라, 일 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오리라. >

 책이 그렇게도 좋으면 옛 선비답게 작가나 학자지망생이 되지 못했나? 고 의문이 가겠지만, 천재나 특수한 행운아가 아니고서는 이러한 직종으로는 밥벌이하기 힘들 테니 자식을 가장 위하는 부모의 뜻을 받들어 생활안정을 위한 전문직을 찾게 된 것이다.

 그래저래 나는 항상 내 직업에 대해 다행으로 여기고 만족하고 있는 사람이다.

 열심히 일해서 생계를 마련하고 난 다음에야 거침없이 자기 취미생활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晝耕夜讀이란 말을 실감하고 있으니, 낮에 밭 갈고 밤에 책 읽는 우리조상의 전통을 나는 이어받았노라고 자부해본다.

 그래서 논어의 "일한 뒤에 기운이 남으면 글을 읽고 쓰고 즐기라"는 말이 고맙게 들린다.

 학문과 취미생활을 뒷받침하는 데는 먹고사는 직업이 필수요건이다.

 천하에 뜻을 둔 유비현덕(삼국지)은 돗자리를 짜서 팔아 생계를 꾸렸고, 장자(莊子)도 집신장사하면서 사색하고 저술활동을 했다.

 여기비하면 면허증 갖고 당당한 기술가진 사람은 여간 행운가가 아니다.

 나로 말하자면 애들이 자랄 때 까지 30과 40세 연대에는 주경야독이 힘겨운 바쁜 세월이었지만, 자녀들 장성한 후의 50대 후반이 되면서부터 여러모로 여유가 생겼으니 이때부터 글쓰기도 시작했던 것이다.

 50에 문필가의 입학생이 되었으되, 의욕만 있고 타고난 재능이 부족한 사람이라 긴장되고 노력해야하는 고역이 있으니 아직 아마투어 영역에서 해매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글 읽기'만은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다.

 공자는 學而時習之 不亦悅乎(학문을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해서, 독서가 인생의 큰 즐거움의 하나라고 가르쳤다.

 학자출신 이효상 선생(작고. 국회의장)은 이 즐거움을 두고 "책은 읽을수록 마음의 체중이 늘어난다."고 표현했으니 실감나는 말씀이다.

 옛날 중국선비 한분은 "사대부가 사흘만 글을 읽지 않으면 거울보기가 미안하다"고 했다.

 마음의 영양이 없어 수척해진 마음이 초라하게 비춰 보인다는 말이다.

 독서가는 책 많이 읽을수록 행복지수가 높아지고, 지식욕은 과할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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