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입양소녀의 수기]

美 아동보호 천국…의사에 학대아동 보고 의무화
입양문화도 발전…입양아 대부분 친자식처럼 보육

▲ 김일훈 박사
- 在美 내과 전문의
- 의사평론가
아동학대

 미국 연방정부는 1974년 CAPTA(Child Abuse Prevention and Treatment. 아동학대예방치료법안)이 제정되었고, 여기에 따라 전체 50주에서는 아동학대에 대한 보고를 의무화시키고 위반시 처벌사항도 규제하고 있다. 10년 전 나와 면식이 있는 교포의사 한사람은 보고의무를 어겼다는 이유로 의사면허를 박탈당했으니, 그만큼 아동학대법의 관리는 엄하다.

 일본에서는 2000년도에 아동학대방지법이 제정되어 충실한 학대대책이 시행되고 있다는 소식이고, 최근 한국의학계에서도 이슈화되고 있는 줄 안다.

 아동학대의 종류는 아동에 대한 신체적 학대, 성적학대, 보호태만, 심리적 학대 등이고, 이중에서도 근래 미국사회에 특히 문제가 되어있는 부분은 성적학대이다.

 그리고 아동보호태만의 예로 13세미만 아동을 집에 홀로 방치하면 부모가 처벌받으며, 그래서 미국가장에선 10∼13세 학생아동을 돌보기 위해서도 가정에 베이비시트가 출입한다.

 옛날엔 젖먹이를 길에 버리는 일이 드물지 않았고 중국서는 소녀매매가 유행이라는 말도 들었으며, 내 젊었을 때만해도 많은 가정에서 공공연히 가난한 집의 어린여식을 돈 주고 대려 와서, 심부름꾼으로 종처럼 몇 년이고 부려먹던 일이 기억난다.

 지금 같으면 가장 중한 아동학대죄에 속할 일들이다.

 여기에 12세에 미국입양아가 되어 양부모에게서 사랑받으며 자라고 있는 중국고아출신소녀(현재 17세. 고교3년생)의 눈물어린 수기를 그대로 번역해서 옮겨본다.

 작년 2월 하와이에 머물고 있을 때 그곳지방신문(Honolulu Star-Bulletin)에 실린 기사가 인상 깊어 보관해온 글이다.

중국입양소녀 수기

 사람들은 어릴 적 내가 겪은 인생여로(旅路)가 가시밭길이라고 말할 것이다.

 작가 로버트 프로스트의 표현처럼 나는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험난한 旅路)을 걸어왔다.

 나는 중국혈통과 중국의 학교와 친구 그리고 모국어와 문화를 이별하고 미국의 새로운 가족을 찾아 나의 모든 과거를 포기했으며, 놀랍게도 나는 미국의 훌륭한 가정의 입양아가 되었다. 나는 상해에서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3가지 결함을 가졌다.

 첫째 중국서 달갑지 않는 여자요 다음은 손 하나가 없는 불구자며, 그래서 세 번째는 길에 내버려진 고아였다.

 자라서 내가 듣기로, 경찰이 상해길가에 버려진 갓난아기 나를 발견하고서 고아원에 대리고 왔다고 한다.

 그곳 고아원은 대부분 불구아동을 수용하고 있었다.

 12세까지 고아원이 내 집이었고, 그곳 교육이란 보잘 것 없었으며 영양음식도 모르고 자랐다. 내 나이 또래의 고아들이 나의 유일한 가족이었고, 우리는 단결하여 우리보다 나이 많은 학생들이 우리를 해치려는데 대항해서 항상 서로를 보호하곤 했다.

 가구라고는 거의 없는 좁은 방에서 소녀 8명이 침식을 같이했고, 고아원학교교실은 대낮에 쥐와 벌레 그리고 밤엔 박쥐가 출입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하는 일에 정신집중이 불가능하고 잠들기 힘들며, 항상 우울한 나날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영아와 걷기 시작하는 아기들을 돌보는 아침시간만은 즐거웠으니, 나 자신 그들의 사랑하는 부모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이 시간만은 내게도 가족이 있다는 환상을 갖게 했으며 그 어린이들은 바로 나의 형제자매가 됐던 것이다.

 처량하고 무미한 고아원이지만 이럴 때면 모든 고아들은 우리가족이었고 나는 그들에 애착을 느꼈다.

 그런데 내가 성장해감에 따라 마음의 상처를 주는 일이 또 생겼다.

 지방중국부모들이 양아를 구하려고 가끔 고아원에 찾아오는데, 그들은 남자나 어린 아기들만 찾고 나는 항상 제외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중 자나 깨나 나를 사랑해주고 키워줄 가족을 간구하던 나의 꿈이 실현되어, 지금 나는 사랑하는 미국부부에 의해 입양아로 채용되어 다른 어린 중국고아소녀와 함께 미국에 5년간 살고 있다.

 17세 소녀인 현재 나의인생은 자유와 사랑으로 충만해 있으며, 어릴 적 겪은 고난이 약이 되어 나에게 강한 의지력을 심어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호기심 많고 헌신적으로 배우려는 학생이 되고 있다.

 나는 기회의 나라미국과 그 국민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양부모를 사랑한다.

 미국역사공부는 중국에서 금지된 인간의 자유와 독립성과 가치를 일깨워주어, 나는 매일 하나님 은총에 감사드린다.

 영어를 전혀 모르는 나에게 양부모는 가정교사를 얻어주었고 나는 열심히 공부하여 실력이 자라나고 있으며, 양부모는 몇 천 달러를 써가며 나를 좋은 사립학교에 다니게끔 해주고 있다.

 미국의 가장 큰 선물은 훌륭한 교육기회라고 여기는 나는, 내가 매일 받는 축복을 헤아리며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는 한손밖에 없는 불구자지만 그럴수록 남보다 더욱 노력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가족과 더불어 보트놀이, 학교 팀의 볼링게임, 바느질, 컴퓨터, 기타(음악)연습, 소프트볼운동 등 많은 과외활동에 열중하고 있다. 내가 받은 은혜를 나는 지역사회에 갚으려고 노력하며, 이미 학교와 지역에 650시간봉사를 했다.

 짧은 영어실력과 불구신체를 갖고서 이정도 일을 해온데 대해 스스로 만족하며, 다음은 일류 대학진학이 목표이다.

 나는 국제경재를 전공하여 나의 3가지 능력 즉 나의 유창한 중국어와 수학실력과 예술재능을 십분 활용하려한다.

 그리하여 내가 얻는 모든 실력을 나의 과거처럼 그늘진 곳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할 계획이다.

 불우한 사람들에게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험난한 길(旅路)을 가는 자에게 성공과 행복이 있다"는 작가 프로스트의 말을 알리고자 한다.

 또한 그의 말처럼 나 자신 "가야할 길이 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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