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대 6년제와 의료 경쟁력]

美國, 약대 6年制 도입시 약사들이 반대
한국, 분업 후 약사들 '약료시대 동경' 찬성
秀才 몰린 의대 기초연구 아직도 외면 '걱정'

▲ 김일훈 박사
- 在美 내과 전문의
- 의사평론가
의약분업과 6년 약대

 옛날 동양사회에서는 한의사한테 진맥 받고서 돈 주고 약을 얻어오는 것이 전통이었다.

 여기에 비해 미국과 유럽에서는 진료소나 병원의사한테서 작은 종이쪽지 한 장을 얻어 근처 약국에 가서 의사가 지시한 약을 사서 복용하며, 이러한 제도를 '의약분업'이라한다.

 의사가 환자진단을 하여 치료방침을 결정한 후 치료에 필요한 약을 처방지에 적어주면 환자는 그것을 갖고 시중약국에 찾아가고, 약국약사는 의사가 발행한 처방전 그대로 약을 담아서 팔면 되는 시스템이 서양전통이요 한국에 새로 생긴 의약분업이다.

 나는 퇴직 후엔 약사와 공적으로 대화할 일이 없는 반면, 환자로서 약국을 찾는 일이 가끔 있어 그들의 일거일동을 유심히 관찰할 기회가 있다.

 다른 전문인 이를테면 의사 변호사 계리사와는 달라서 약사 특히 시중약국약사는 자기 판단이 가름하는 주체성이라곤 전혀 없고, 철두철미 남(의사)의 결정과 지시에 충실해야하는 직업인이라는 것을 보고 느끼곤 했다.

 얼핏 보기엔 그들은 약국판매원이요 의사심부름꾼에 불과하고, 그들의 일과는 각 환자의 처방전조제와 기록과 컴퓨터기입 그리고 환자마다 다른 여러 종류의 복잡한 보험커버를 환산하여 환자지불요금을 산출하는 일이며, 그것으로 항상 바쁘다.

 권위보다 실리를 찾는 미국인이고 보면, 70년대 미국약사와 약대생들이 약대격상(6년제)에 반대했던 이유를 알만도 했다.

 당시 약대6년제가 돼야한다는 취지 가운데 약사의 다음 3가지 역할을 강조하면서 실력향상을 주장했다(괄호 안은 지금 현실을 알림).

 1. 환자에게 약리설명을 충분히 해주는 일.(항상 다망한 그들이 환자에게 약 부작용 등 설명해줄 시간여유는 전혀 없고, 프린트 1-2장 주고서 "이것 읽어보시오"가 전부다.)

 2. 의약품의 안전사용에 대한 책무.(안전사용에 대한 의약지식과, 안전사용 하게끔 착오 없이 약을 조제하는 정확한 능력은 별도문제이다.)

 3. 의료과오증가에 따른 약사의 책무.(실리 없이 '약료'를 강조하는 약사들이 만들어낸 역효과현상이니 자업자득이다.)

 결국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약'을 처리하는 전문인으로서의 교육연장이 강조되어 미국서 1970년대에 약대6년제가 실현되었던 것이다.

 의약분업이 됨으로서 한국약사들 사정은 급변했으리라 짐작이 가는데, 그 대응방법에 의문도 없지 않다.

 한국약학지도층이 주장하는 6년제 약대에 대해 약사들은 모두 찬성한다는 소식이다.

 과거 자유자재로 '약국의료'행위를 자행하던 때와는 달라, 지금약사들은 분업으로 말미암아 하루아침에 처방전지시대로 수동적으로 손발만 빨랑빨랑 움직이면 되는 단순한 직업인이 되었다.

 그런데도 왜? 이전보다 더 깊은 의약지식이 필요하다고 느껴 시중약사들도 6년제를 찬동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실리보다 권위를 찾는 유교전통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솔직한 말로 '의약분업'을 함으로서 의료행위를 금지당한 현실에서, 약사의 책무가 늘어나기는커녕 오히려 그 반대인줄로 알고 있다.

 분업이전 한국의 시중약사는 문진에 의해 환자상태를 진단하고 그에 따라 자의로 약을 조제해서 판매했다.

 내과나 소아과의사에 버금가는 공공연한 약국의료행위가 허용돼왔고, 마약판매나 주사제 치료하는 일만 없으면 법의 단속대상도 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현대사고방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지 않지만, 이것이 적당히 상부상조하는 동양식 회색지대문화라 할 수도 있겠다.

 이러한 '약사의료'시대에 의학학습을 위한 6년제가 필요했을 줄 아는데, 당시엔 그런 말이 전혀 없었다.

 이제 다시 그리운 약료시대복귀를 기대하는 심정에서 6년제를 원하는지 모를 일이다.

 의약분업 때문에 한국약사들은 선진국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의료약료행위'라는 특권을 박탈당했어도 조용했고, 오히려 의사들이 반기를 들고 나왔다.

 사실인즉 의료재정의 뒷받침 등 근본개혁 없이 하루아침에 도입된 의약분업으로, 의사들만 피해를 입고 있으니 이것 또한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슬픈 비명 우수인재 의대집중

 의사수난시대에 당면했어도 한국의 수재들은 의대로만 몰린다고 들린다.

 '의료대란'때 의사단체에서 발표한 "우수한 학생들은 의대지망하지 맙시다."라는 애절한 호소문이 있었다.

 불우한 시대에 태어나 많은 풍파를 겪은 우리부모들은 다음세대만은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자식에게 의대지망을 강요해왔다.

 그들에게 의사란 "대우받고 수입도 좋은 가장 안정한 직업"의 대명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기성세대의사들은 그들이 쌓아올린 최고교육과 수련과 경력을 무색케하는 현실을 개탄하며, 같은 길을 걷겠다는 후진들을 만류하는 심경도 안타깝다.

 그래도 여전히 수재학생들은 의대에 집중하는 기현상을 보인다는 소식이고, 들리는 말에 "시골 아무게 의대입학이 서울의 1등XX대학보다 훨씬 어렵다" 고 전한다.

 우수학생들이 의대-법대에 집중 지원하는 현실을 두고 언론에서는 "권력과 금력지향으로 가는 국력손실"이라고 비평한다.

 이를 수긍이나 하듯, 의협과 변협회장단회합에서 국가발전을 위해 의대-법대 과다지원을 삼가달라는 담화발표도 있었다.

 국가장래를 위해 많은 우수인재들이 학문연구와 이공계산업분야를 택하기 바란다는 대승적인 권유이다.

 요즘 정부에서 푸대접받는 한국의사는 수입이 크게 줄어드는데도 의사숫자는 점점 늘어난다고 한다.

 만일 이런 경향이 계속된다면 장차 우리후배들은 지금의 필리핀의사들처럼, 운전기사로 전락하거나 아니면 간호학교에 편입하는(*주) 꼴불견을 예방해보겠다는 노파심이 '회장단담화'의 동기일수도 있겠다. (*주: Lancet 2003. 12. 13.).

 최근 나는 일본대학의 의과를 비롯한 각 대학학과별합격점수 랭킹을 읽고서, 상상이외의 기현상에 놀란바 있다.

 원래 일본의 최고수재집합소가 동경대와 교도대의 이학(理學)부였고 그곳이 바로 노벨상을 배출하는 곳인데, 지금은 의과에 밀려 2류 의학과와 동격으로 격하되었기 때문이다.

 랭킹(서열)은 동경대학의과(1위), 교도대학의과(2위), 동경의과대학(3위), 나고야대학의과(4위), 오사카대학의과(5위), 구주대학의과(6위), 북해도대학의과(7위), 동북대학의과(8위)등 여러 의과를 거쳐 동경대학이학(理學 1=물리화학과)은 16번째다.

 단연코 톱 랭크여야 할 동경대이학은 삿뽀로 의대(14위), 교도부립의대(15위), 히로시마의대(17위) 등과 막상막하로 격하되고 있다.

 그다음 서열은 51번째까지 모두 의대가 차지하고, 일본의 공학계수재가 모이는 교도대학건축과가 52위이다.

 보기에 따라 망국현상이라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오래전 나는 "한국인 노벨과학상은 언제 가능한가?"라는 에세이(www.issuetoday.com 2003. 10. 10.)에서 "노벨과학상을 받기 위해서는 국민의식개조가 선행되어야한다"는 요지의 글을 쓴바 있다.

 미국은 의학연구비의 1/3을 기초의학에 투자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서는 전체의대연구비의 4%만이 기초의학용이며, 의사박사과정에서도 기초의학연구생은 2-3%에 불과하고 모두가 백해무익(*주)한 임상박사지원자라 한다.(*주: 의협신문 김일훈 칼럼-80번 참조).

 하고많은 수재들이 의대에 모여들어도, 진짜 수재를 요구하는 연구분야를 외면하는 현실도 유감이다.

 근래 서울의대학장으로 취임한 40대 젊은 기수 왕 교수는 "의대의 우수한 인적 자원을 의료와 의학의 전략산업으로 육성시켜 국가발전으로 이끌어가겠다"는 포부를 피력한바 있다.

 우수인력을 활용하야 의료계혁신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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