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논 → 반자동 → 디지털로 발전 '격세지감'
輕薄短小의 시대지만 인간적 감성엔 미련

'순복이네'는 사진사 아저씨 이름이었다. 읍내에서 자그마한 사진관을 경영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인편으로 기별을 하시면 십리길을 달려오시곤 했었다. 8·15 광복절 이야기다.

고향집 대청마루에는 다른 집들처럼 검은 테 사진틀이 걸려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기전의 일로 기억하고 있다. 어느날 동생과 나란히 서서 찍은 흑백사진이 사진틀 속에 들어 있었다.

“여기 보아라” 불이 번쩍 터지는 소리가 무서워 사진 찍지 않겠다고 발버둥치던 기억도 새롭다. 어른들이 달래느라고 땀을 흘린 흔적이 확연한 사진속에 나는 오른손에 구두주걱을 들고 서 있고, 동생은 찬장속에 놓여 있던 목제기(木祭器)가 머리끝에 얹혀 있어 상투를 틀어 올린 것처럼 보이는 희안한 사진이었다. 지금 그 사진을 찾을 길 없으니 기억 속의 영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52년전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받은 목도장은 지금도 잘 쓰고 있지만 졸업앨범은 6.25전쟁 피난통에 사라져 버렸다. 얼마전 군복무 시절 같은 병원 치과에 계셨던 임선생님이 나의 결혼식날 찍어 보관하고 계셨다는 칼라슬라이드 두장을 주셨다. 35년전 기억도 새로운 사진이었다.

상하(常夏)의 나라 베트남 나트랑의 풍광을 생각해 본다. 1967년 파월군의관 시절이었다. 야전병원 BOQ는 명곡녹음실이었다. 아까이(AKAI)녹음기 테이프는 이방 저방 옮겨다니면서 분주하게 녹음을 하고 있었다. 사진기는 다른 하나의 여가 선용품목이었고……

그 당시 캐논 카메라는 인기품목이었다. 캐논데미는 칼라 필름 한 컷을 반으로 찍어 두장의 사진을 만들 수 있었으니 더 구입하기가 어려웠다. 막강군대, 파월군의 명성처럼, 막강한 실력자 아니면 PX에서 캐논 데미는 구입하기 어려웠었다. 하기야 텔레비젼은 인기 최고여서 훈장수훈자나, 전상자 이외는 살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을때 였으니까.

지포라이터 시대가 지나고, 가스라이터시대, 마호병 그리고 선풍기가 인기 절정이었던 시절, 그래도 캐논 데미를 가지고 있다면 으쓱 해지던 시절이었다. 파월기간에는 칼라 슬라이드를 만들어 환등기를 사서 비추어 보는 것이 대유행이었다. 그것은 시간 킬링이었다. 심심하고 적적하면 병원사격장에서 M16을 쏘아 대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러나 귀국해서 추억의 사진을 보여줄 때의 불편은 여간 크지 않았었다. 환등기 프로젝터를 준비하고 스크린 준비하고, 칼라 슬라이드 정리하고……

그래서 또 돈들여 사진을 만드는 소동을 겪던 기억도 새롭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전자화시대, 멀티미디어 시대라 하지 않는가?

학술회의장에서 연제 발표하던 기억이 새롭다. 종이에 궤도를 그려서 한장씩 넘기며 발표하던 시절도 있었고, 흑백 슬라이드가 총천연색 슬라이드로 변하였고, 의국에서 카메라를 가지고 슬라이드를 직접 만들던 시절도 어제 같은데 이제는 PC를 써서 Microsoft 파워 포인트로 강의를 하는 세상이 되지 않았겠는가.

흑색 X-ray 필름은 이제 자취를 감출 때가 되었고 PACS시대에 진입하고 있으니……

초음파, 내시경 시대, 모든 것은 영상화되어 사진으로 보관할 수 있게 되었으니 변화의 시대는 끝이 없다. 목에 핸드폰을 걸고 있으면 신세대, 회중시계처럼 허리에 차고 있다면 구세대라는 우스개 소리도 유행이다.

신세대는 등산할 때 디지탈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스크린 속에 피사체를 보면서 사진을 찍고, E-mail로 사진을 보내줄 수 있으니 편리한 세상임에 틀림없다. 어느날 산정상에 도착했는데 카메라가 없을 때는 아쉬움이 많았다. 몇번인가 젊은이들과 사진을 찍은 일은 있는데 아직도 보내오는 사람이 없는 것을 생각하면 여러가지 생각이 앞선다.

지금은 TV 홈쇼핑시대다. E-쇼핑시대가 되었다. 줌렌즈, 자동거리 측정, 자동초점, 충전 확인램프, 연속촬영, 자동초점마크, 촬영범위 표시마크등 전자동 카메라 시대가 되었다.
집에는 카메라 역사 전시관처럼 70~80년대 카메라들과 전자시대 전자동 카메라가 퇴역을 하거나, 현역으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나의 귀여운 손녀 형인이는 이제 6개월이 되었다. “배 고파 떼를 쓰며 울면 정신이 없어요”

“옹알이를 시작 했어요” 아버님! “이제 뒤집어요” 전화가 바쁘다. “이제는 무엇이나 잡아끌어 서랍을 모두 고정해 놓았어요”

자라는 모습이 귀엽고, 앙증맞다. 유아용 비디오를 보면서 방끗거리며 좋아하는 모습이라니! 애아범은 전자동 카메라를 빌려(?)갔다던가?

귀여운 손녀가 자라는 모습 사진이 속속 도착하기를 기대하면서……돌려주기를 기다린다?

지난 8월초에 둘째 딸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아빠! 이 카메라 가지고 가도 되지요. 그래라 물론되지!

다른 또 하나의 전자동 카메라는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래서 두 늙은이는 장농속에 깊이 들어가 있던 리코카메라를 다시 쓰게 되었다. 며칠전 토요일 등산 채비를 하면서 카메라에 필름을 넣고 있었다. ASA를 수동 조작하고, 필름을 카메라에 끼워 넣고, 무심코 뚜껑을 닫았는데 필름 감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배터리에 이상이 있는가? 배터리를 갈아 끼워도 요지부동이었다. 학교 교문앞 카메라점에 들러 고장 신고를 했겠다.

젊은 알바이트 학생은 이리저리 만져 보며, 왠일이지?

그 학생이 실수(?)로 셔터를 누르니 필름이 감겼다. 반자동이란 기계라는 것을 잊어 버리고, 전자동 카메라에 길들었던 습성이 반자동 기계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실수는 한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필름 리와인더를 작동위치에 넣었더니, 삐소리가 끝임이 없이 계속 울려대고 있었다. 리와인더 레버를 원위치로 다시 옮겨놓는 것은 또 잊어 버렸던 실수였다.

나는 아직은 미숙한 베이비씨터 조수밖에 못된다. 손녀 그 녀석이 낯을 가려서 빨리 친해져야 겠다. 숙제가 크다. 보행기를 타고 앉아 큰 소리내어 웃고 옮겨 다니는 모습이 참 귀엽고 예쁘다.

형인이 큰 고모는 “너는 마이클 잭슨을 닮았느냐? 보행기를 앞으로 밀지 않고, 뒷걸음질을 하고 있으니!”

귀여운 손녀의 모습을 놓칠세라, 리코카메라 샷터는 바삐 돌아갔다. 그런데 또 실수를 하였다. 반자동 카메라는 후래시레버를 작동위치에 넣어야 하는 것을 전자동 카메라처럼 연속 셔터를 누르기만 했으니……

환자 진료 업무 작업량도 OCS로 처리되면서 많은 발전이 있었다. 편리해진 날이 어제 같던데, 벌써 컴퓨터 용량을 따지며 화면이 늦게 떠서 진료시간이 길어진다는 불평을 하게도 되었으니……

사실 사람은 편안하면 편안한대로 타성이 붙는가 보다. EC(Electronic Commerce)의 시대, 감성 마케팅 시대라, 장후중대(長厚重大)의 시대에서 경박단소(輕薄短小)의 시대로 변하면서 더 빠르고, 더 가볍고, 더 작은 기계로 더 편리하게 살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편리한 생활이 불편한 생활로 변할 때 더 어려움을 겪는 것이 우리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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