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A가 안락사와 안락사 견제법안을 반대한 모순된 이유

1997년 미국 오리건주는 법적 논란을 거친 뒤, 세계최초의 안락사 법 즉 PAS(physician assisted suicide, 의사보조자살)를 합법화한 지역이 되었다. 미국의사회원을 대표하여 AMA(American Medical Association. 미국의사회)는 성명을 통해서 안락사반대를 천명한바 있다.

그리고 안락사에 대한 거센 반발여론을 의식한 연방약품통제국 (DEA = Drug Enforcement Administration)의 Thomas Constantine 국장은 “PAS를 위해 치사량의 약 처방을 하는 오리건주 의사들은 연방 통제약품법을 위반함으로, 약 처방면허증을 잃게될 것이다”고 경고했다(11/5/1997). 그는 또 오리건 PAS법을 반대하는 국회의원들 특히 의회의 법사위원장인 하원의 Henry Hyde 와 상원의 Orrin Hatch에게 서신을 보내어 “아시다시피 DEA는 통제약품을 합리적인 목적이외에 처방하는 의사들의 면허증을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을 통제약품 법(CSA=Controlled Substance Act)에 의해서 위임받고 있다”고 언명했다. 이렇듯 강력한 권한을 갖고있는 DEA국장의 한마디로 오리건주의 안락사법인 DWDA(Death with Dignity Act)는 암초에 부닥치게 되었다.

PAS 법을 옹호하는 오리건주 법무국장은 “주민의 다수결로 결정된 DWDA는 합법이며, DEA서 이에 관여할 하등의 권한이 없다”고 반박했으며, 오리건 주정부와 안락사 추진가들의 빗발치는 항의가 DEA국장의 상관인 Reno 연방법무장관에게 쇄도했다.

한편 PAS를 반대하는 많은 국회의원들은 DEA국장의 결정을 지지하라고 Reno 장관에게 압력을 가했다. 그러던 중 Reno는 반년간의 침묵을 깨고 1998년 6월 선언하기를 “오리건의 DWDA 는 연방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부가해서 “DEA는 CSA에 의해서 의사처벌권한을 위임받은바 없다” 고 말함으로써 자기부하 DEA국장의 발언을 번복했다.

Reno 장관의 결정직후 연방의회내의 PAS 반대세력은 Henry Hyde 의원을 중심으로 약품통제를 통해서 PAS를 금지시키는 CSA 수정안을 작성하여, 하원 법사위를 거쳐(6대5로 통과) 1998년 9월15일 본회의에 상정할 계획이었다.

'약품치사량 남용 예방법'(Lethal Drug Abuse Prevention Act of 1988. HR 4406) 이라고 불리는 이 법안은 다수의원들이 찬성하여 의회통과가 낙관시 되었다.

그런데도 이 법안은 그 이상 진전을 못보고 본회의 상정도 못한채 주저앉게 되었다.

그 주된 이유는 AMA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PAS에 앞장서서 반대성명을 발표했던 AMA가 PAS를 저지하려는 법에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여자문제로 탄핵받고있는 대통령(클린턴)이 의사들 편에 섰기 때문이다.

AMA 대변인 Dr. Reardon은 이 법을 비평하며 “그렇지 않아도 의사들은 법이 두려워서 고통받는 환자에 충분한 진통제 사용을 꺼리는데, 이 법이 생기면 진통제사용을 더욱더 제한하는 결과가 된다”고 말했다.

뉴욕의대 정신과의 Dr. Hendin 의 말은 더욱 깊은 뜻을 담고있으니 “AMA는 항상 의사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노동조합역할을 하고있으며, 회원들에 대한 어떠한 의료행위 제한이나 처벌에도 정면에 나서서 반대하는 기관이다”고 했다.

이 법안(HR 4006)에 대한 의사들의 찬성수도 꽤 많았다고 하나, 대다수회원은 의사단속법이 될 것을 두려워하며 반대했다.

법안에는 운영을 원활케 하기위해 법무부내에 전문가평가위원회를 설치한다는 조항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 AMA 이사장 Dr. Reardon 은 평하기를 “그것으로 해서 의료행위를 침범하는 법을 반대하는 우리 의사들을 무마시킬 수는 없다. 그러한 기관은 다만 우리의 염려를 가중시키는 불필요한 옥상옥(屋上屋)의 기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고 했다.

미국내과의사회(ACP=American College of Physician)회장은 “이 법이 통과되면 의사들의 의료제한 때문에 고통받는 환자치료에 도움보다 해를 더 줄 수 있다”는 견해를 발표하며 반대했다.

여기서 특기할 일은 PAS를 반대하는 클린턴 대통령도 이 법에 불찬성했으니, 그는 의사들 말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다. 의사들을 집단이기주의자로 모는 한국현실과 대조해볼 때 부러운 일들이다.

클린턴정부의 법무차관 Sutin은 별도로 이 법을 심의중인 상원법사위에 서신을 보내어 클린턴의 반대의사를 정식 통고했던 것이다.

Lethal Drug Abuse Prevention Act는 요약해서 Prevention Act 라고 도 불렀으니, PAS를 예방한다는 뜻도 된다. PAS 결사반대에 앞장섰던 AMA가 PAS 예방법을 반대했다는 사실은 외견상 모순된 일이라 하겠지만,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 법의 목적은 PAS 예방이지만, 그 내용은 PAS 방지를 위한 의사의 의료행위제한과 이를 위반한 의사의 처벌이 주가 됐기 때문이다. 여기서 의사권익을 보호하는 노동조합이라 할 AMA는 이 법이 아무리 좋은 목적을 지녔어도 자칫하면 선의적(善意的)인 의사의 의료행위마저 억제하여, 결과적으로 의사와 환자에게 득(得)보다 실(失)을 가져다 줄 우려가 있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다고 천명한 것이다. 의료제한과 처벌규정이 위주로 된 법은 그 취지가 아무리 훌륭해도, 장차 의사와 정부간에 이익이 상반된 일이 생길 경우 의사탄압의 도구로 역이용될 수 있다는 사실도 배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비근한 비유로 이 법을 한국의 반공법과 비교해볼 수도 있겠다. 과거 군사정권 아래서 반공법이 야당탄압에 많이 악용됐으며, 따라서 반공투쟁의 전력이 있는 많은 야당의원들이 반공법의 일부내용에 부정적이었던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렇듯 AMA는 의사들을 보호하는데 발벗고 나서고 있으며, 이러한 예는 한국의사회도 마찬가지라 하겠다. 의료대란 때 의사회간부들이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감방출입을 해가며 한국의사동료들을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한 공로는 한국의학사(醫學史)에 높이 평가될 것이다.

선의적인 의사의 의료행위를 만에 하나라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위의 Prevention Act를 반대해서 저지시킨 AMA 는 이러한 부정적인 행동에 멈추지 않고 긍정적 방향으로 전향하여 환자고통을 도와주는 것을 목적으로, 긍정적인 CSA(Controlled Substance Act) 개정안인 Pain Relief Promotion Act of 1999(진통제 촉진법. HR 2260)을 적극 추진하여 1999년 10월에 하원을 통과하기에 이르렀다.

이 법안의 서두에 적힌 법안목적은 다음과 같으며, 전번의 Lethal Abuse Prevention Act 와 동일한 CSA의 개정(amend)안에 불과하다. “an Act to amend the Controlled Substance Act to promote pain management and palliative care without permitting assisted suicide and euthanasia, and for other purposes”.

그러나 그 내용에 있어 먼저 법(HR 4006)이 CSA(통제약품법)을 강화해서 만든 약품 치사량 사용에 대한 처벌이 위주인데 비해, 나중의 법(HR 2260)은 CSA를 완화해서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의사의 자유재량으로 진통제(의도적인 치사량이 아님)를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는 법안이다.

다른 표현으로 말하자면, 고통받는 말기환자에게 충분한 진통제를 써서 인도적으로 환자를 치료함으로서, 고통 때문에 죽음을 앞당겨 비인도적인 PAS를 택하려드는 환자를 도와주겠다는 긍정적인 뜻이 담겨있다. 처벌을 염두에 두지 않고 소신껏 말기환자를 치료하라는, 의사의 재량을 존중하는 내용이다.

두 법안의 취지가 비슷한데도, 전자는 일벌백계(一罰百戒)의 독재냄새가 풍기는가 하면, 후자는 환자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보라는 인도적이고 민주적인 따뜻한 인상을 주는 법이다.

먼저 법이 CSA를 강화한 '찬 서리 법'이라면, AMA가 추진 통과시킨 CSA를 완화한 나중 법은 '햇볕 법'이라고도 할 것이다. 같은 CSA를 개정해서 적용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그 결과가 북진통일과 평화통일만큼이나 차이가 난다고도 하겠다.

결론적으로 안락사를 반대하는 AMA는 의사를 보호하는 노동조합이며, 법의 접근방법에 있어서도 AMA는 목청 높은 정치가들이 배워야할 교훈을 시사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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