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가식 서가숙' 시대]

'동가식 서가숙(東家食 西家宿)한다'라는 말은 좋지 못한 뜻에서 떠돌이 신세를 말한다. 그러나 필자는 원래 글자 그대로 해석해서 '식사내용은 동쪽 집(동양)에서, 생활양식(숙소 등)은 서쪽 집(서양)에서 배운다'는 말로 고쳐서 21세기 우리사회에 적용하고싶다.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식사는 일본식사를 위주로 한 동양식(東洋食)이요, 가장 이상적인 사회생활양식은 서양식 민주주의와 서양적 문화생활이라는 말이다.

최근 AHA(미국심장학회. American Heart Association)를 비롯한 미국의학계에서는 식생활에 관한 한 동양식에서 배우자는 연구분위기가 조성되어있다.

오래 전부터 일본은 건강수명이 단연 세계 첫째요, 한국을 비롯한 다른 동양선진국가들도 현대의학이 보급됨에 따라 위생향상, 전염병퇴치, 유아사망률 감소 등의 결과 평균수명이 급속도로 세계열강을 따라오는 사실을 미국의학계에서는 큰 관심을 갖게되고 그 중에서도 동양인의 식성에 주목했던 것이다.

왜 주목했을까? 서튼의 법칙(Sutton's law)에 따랐기 때문이다.

William Sutton 이라는 악명 높은 은행강도가 체포되었다. 재판정에서 판사가 '왜 하필이면 은행을 털었느냐?'는 심문에 '그것도 모르십니까. 그곳이 바로 돈이 싸여있는 곳 아닙니까!'라고 대답했다. 그의 명답은 바로 사건진단과정의 핵심으로, 현재 많은 과학자들에게 애용되고있다. 증거를 앞세운 논의야말로 사리판단의 필수요건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경험을 말하자면, 병원회식이나 동양음식점에서 미국인들은 동양인이 먹는 식성과 식탁을 유심히 바라본다는 것을 자주 느꼈다. 아마도 그들이 알기로는 동양인들은 모두가 날씬하고 나이보다 10살쯤 젊어 보이는데, 그 주된 이유가 음식덕분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의 의학계, 특히 주로 노인병에 관여하는 심장학회와 암 학회는 세계에서 최장수인인 일본인과 선진국동양인의 식성에 주목하게되고, 지난 7년간 이들 동양식품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리고 연구결과는 동양식이 장수의 비결임이 판명된 것이다. 즉 은행을 뒤져보니 그곳에 금은보석이 싸여있었다는 말이다.

[AHA·ACS 식이요법 지침]

금년부터 AHA에서 수정된 식이요법지침(食餌療法指針. Dietary Guidelines)의 4대 목표를 여기에 소개하자면 다음의 4가지이다(표1 참조).

<표 1> 美 심장학회 식이요법 4大목표


▶ 건강식품을 골고루 먹는 일
건강식품(같은 종류에서도 여러 가지를 추천):신선한 과일과 야채(1일 5회 serving *), 곡물(쌀, 빵, 국수 등. 겨가 많은-high bran 곡물이 좋음. 1일 6회 serving *), 지방이 없거나 극히 적은 우유, 생선(1주에 2회 이상), 콩 종류 특히 대두(大豆)제품(두부 포함. 1일 20-25Gm), 가금(家禽. 닭, 터키 등), 지방 없는 육류(제한해서). (주: serving: 1회용으로 먹게끔 지정한 적당한 분량).

▶ 자기 체격에 맞는 적절한 체중유지
본인의 활동에 알 맞는 양의 음식섭취: 적당한 운동과 절식으로 이상적 체중유지는 물론, 정상적체중이 줄지 않게끔 충분한 영양섭취.

▶ 정상 콜레스테롤 유지
몸에 해로운 포화성지방(飽和性脂肪.주로 동물성지방)과 콜레스테롤이 높은 음식을 제한하고, 비(非)포화성지방(식물성지방, 생선, 두부 등 대두제품, 호두와 밤 등 견과(堅果)로 대치함.

▶ 정상혈압 유지
소금 1일 6Gm과 술 1일1잔으로 제한. 적절한 체중유지. 건강식품(식물성음식, 과일과 야채, 그리고 무지방 또는 저지방 우유제품 등) 애용할 것.


1. 건강식품을 골고루 먹는 일. 2. 자기 체격에 맞는 적절한 체중유지. 3. 정상 콜레스테롤유지. 4. 정상 혈압유지.

그리고 ACS(미국암학회. American Cancer Society)의 영양지침(榮養指針. Nutrition Guidelines)은 다음과 같다.

1. 식물성 음식을 주로 섭취하라 2. 동물성 지방과 육류를 제한하라 3. 적절한 육체적 활동을 하며, 건강체중을 유지하라 4. 만일 술을 마신다면 1잔으로 제한하라.여기서 보듯이 ACS의 영양지침서는 AHA것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하며, 이러한 사실은 결코 놀라운 일이거나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건강에 이르는 길은 오직 하나임을 암시해준다.

[AHA서 새 강조한 東家食]

미국심장학회에서는 국민의 제1 살인자인 심장병과 동맥경화증을 예방하기 위한 건강식이요법을 지난 몇십 년간 추천하고 있었는데, 최근의 연구결과를 반영해서 수정을 가한 새 지침서(Dietary Guidelines)를 지난(2000년) 10월에 발표했다.

과거의 지침서 역시 동양적인 음식을 권장하는 내용이었지만, 이번에 수정한 건강식 추천에서는 구체적으로 동양적인 사례를 몇 가지 추가했으니 다음과 같다.

첫째로 4대 지침 중에 '적절한 체중유지'조항을 새로 넣어 강조했다. 날씬한 평균적인 동양인 체중을 닮으라는 뜻을 암시한다. 미국에 처음 와서 가장 먼저 느끼는 진풍경은 뚱보들이 많다는 것인데 이것뿐만 아니라, 대부분 미국노인들의 '체중과다'가 다른 이유와 더불어 그들을 세계 제1의 심장질환의 나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건강을 위해 미국인(美國人)을 글자그대로 날씬한 '아름다운나라 사람'으로 만들자는 의욕이 담겨있다.

둘째로 4대 지침 중 1(건강식 골고루 먹기)과 3(콜레스테롤 정상유지)의 해설에서 처음으로 '생선애호 적극 장려'를 등장시켜, '1주일에 2회 이상 생선을 먹을 것'을 강조했다. 옛날 서양인은 동양인의 생선식성을 크게 비웃은 적도 있었다.

유명한 소설영화 Shogun(쇼군)에서 400년 전 일본에 표류했던 영국의 선원들이 일본음식을 불평하며 '이따위 비린내나는 더러운 것(생선)을 음식이라고 주느냐'고, 생선을 내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서양인이 찾는 육식은 당시 일본에서는 법적으로 금기돼있던 시대였다. 그런데 이제 서양인은 그들의 전통음식인 육류는 악(惡)이요, 그들이 천시하던 동양인의 생선이 선(善)이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됐으니, 못마땅하지만 생선을 가까이 할 수밖에 없고 또 그들의 선생님(AHA)이 그러하기를 강요하게된 셈이다.

역사적으로 음식에 관한 한 동세서점(東勢西漸)이라고 하겠다. 생선지방(fat)의 주성분이라 할 omega-3 fatty acid, 특히 EPA(Eicosan-Penpanoic Acid)와 DHA(Docosa-Hexaenoic Acid)는 노화현상인 동맥경화를 예방해서 심장병과 뇌졸중을 줄이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는 불로약(不老藥)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미국심장학자들은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그 결과 AHA에서 적어도 1주에 2회이상 생선식사를 강요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세 번째는 동양인의 두부 먹는 법을 배우라는 뜻이 담긴 지침이다.

가장 쉽게 농작할 수 있는 농산물 '콩'은 원래 서양에서는 동물사료에 불과하다. 그러나 가난한 동양사회에서는 힘들지만 맛있는 '쌀' 농사에 추가해서, 쉽게 얻는 보리(high bran)와 콩으로 건강식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동양인의 지혜는 흔한 콩을 두부로 멋있게 변조시켜 맛있게 먹는 법을 고안해냈다. 이 두부가 세계적으로 퍼져 현재 Tofu(두부)는 국제적 식품이 되었다. AHA의 새 식이요법 지침서작성의 책임자이기도 했던 Erdman 박사는 지침서에 추가해서 말하기를 “콩(두부)식사를 매일 한다면 나쁜(LDL)콜레스테롤감소에 크게 도움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으며, 1일 20~25Gm 먹기를 추천한다”고 했다. 콩의 단백질의 주성분인 Isoflavones이 큰 역할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정부의 FDA(식품약품 관리국)에서도 콩 음식제품을 장려하는 뜻에서, 제품회사가 콩 식품이 건강식이라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있다. 그래서 1997년 새로 나온 콩 식품이 39개에 불과했던 것이 2년후엔 382개로 급증했으며, 2001년도 콩 음식제품의 매상이 $30억불이 되리라는 예측이다.

서양인에게 동물의 먹이로만 사용됐던 콩이, 동양인의 지혜를 배워 앞으로 두부 등 콩 제품이 미국인의 필수음식이 되어가고 있다.

Tofu(일본발음의 두부)는 임진왜란 때 일본에 납치되어간 조선인에 의해서 일본서 제조되어 그들에 보급되었으며, 기록에 의하면 조선인 박호인(朴好仁)이 처음으로 일본 사국(四國)에서 제조했고 현재 그의 후손이 일본에 살고있다. 그런데 Tofu를 비롯해서 조선인삼이 'Jinseng', 그리고 우리의 태권도가 'Karate'로 모두 일본말로 세계에 보급되었으니 억울한 일이라 하겠다. 한국의 문화담당 책임자들은 앞으로 이런 문제에 신경을 써 볼일이다.

네 번째는 종전과 달리 계란과 조개를 긍정적인 음식으로 취급하게됐다는 사실이다. 값이 싼 계란과 바닷가 조개음식은 옛날부터 우리 동양인이 좋아하는 영양가 높은 음식이었는데, 최근까지 콜레스테롤이 높은 음식이라 해서 AHA의 제한음식에 속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들 음식에 내포된 콜레스테롤 중에 나쁜(LDL)것 비율이 아주 낮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따라서 금년부터 매일 1개정도의 계란이나 적당량의 조개류 섭취는 해가 없으니 기분 좋게 먹어도 괜찮은 것으로 되었다. 다섯 번째 수정된 사항은 술이다. AHA와 ACS에서의 식사추천이 서로 비슷한 가운데서도, 술에 대한 관점만이 좀 차이가 있었다. 즉 과거 AHA에서는 적당량의 술이 심장혈관질환을 감소시킨다는 점에 중점을 두어, 적극적으로 매일 1잔술을 추천한바 있다.

그러나 ACS에서는 술이 간과 여러 기관, 그리고 암에 해독을 끼치고 임산부에 나쁘다는 점에 유의하여, 만일 술을 마시고 싶으면 1잔으로 제한하라고 소극적 추천을 해왔다. 이번 새로 나온 AHA 지첨에서는 ACS와 마찬가지로, 덕보다 해가 많을 술의 부작용을 의식한 나머지 술을 꼭 마시고싶으면 남자는 2잔 여자는 1잔으로 제한하라는 소극적인 추천을 담고 있다. 술의 생리적 사회적 해독에 더하여 많은 한국인의 특수체질을 고려한다면(참조: 필자의 한국인과 술), 한국인에게 술 1잔 추천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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