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회통과 힘든 부적격한 초안 -

의료개혁안이 1,342 쪽이나 되는 복잡한 내용이 말썽이었다. 입안자는 말하기를 "복잡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미 복잡하게 돼있는 기존제도를 두고 작업해야하기 때문이다"라고 변명했지만, 국회의원들도 읽기를 꺼려했으니 의회통과를 겨냥한 현명한 방법은 아니었다.너무나 두터워서 윤곽조차 파악하기 힘들다고 야유 받았으며 전문가들에게도 어려운 내용이었다. 그리고 어려울수록 더 관료적이며 정부통제색채가 농후하다는 비난을 받게되었다. 그래서 정부통제가 강하고 법안자체가 어렵다는 두 개의 나쁜 이미지가 가중되어 클린턴 개혁안은 국민에게 마이너스 이미지를 퍼뜨리게되었던 것이다.

복잡하고 포괄적인 '의료개혁안'은 분할 심의해야하는 미국 의회의 정책책정과정에 어두운 클린턴의 정치적 기술 미숙과 경험의 부족을 말해주고 있다.법안이 의회에 상정되면 의회의 해당 위원회에서는 그 내용에 따라 각 소위원회에서 제가끔 권한이 허용되는 관련부분만 분할 심의하게 짜여져 있다. 예를 들어 법안내용 중 세제에 관한 규정은 세입위원회에서, 그리고 노동자의 후생에 관한 내용은 교육노동위원회에서 다루어진다.그런데 클린턴 안은 너무나 방대하고 포괄적인 법안이어서 분할심의 하는데 부적격이었다고 전한다.

또한 심의과정에서 각 위원장과 위원들은 자기네 정치적 선전목적으로, 또는 압력단체의 이해를 반영하기 위해서 법안에 수정을 가하려고 든다. 따라서 수정에 대비해서 법안을 기술적으로 작성해야하는데, 개혁안은 여기서부터 실패했다는 것이다.

1993년 11월 20일 미국 상원과 하원에 동시에 제출된 클린턴 의료개혁법안(H.R. 3600)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민주당의원의 일치단결과 여러 공화당의원(하원에서 17명, 상원에서 7명)의 협조가 필요했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에서 민주당원의 이탈도 막지 못했다.

언론대책결여와 반대파 로비앞장에서 언급한바 같이 힐러리 작업 팀의 일 진행과정에서 비밀주의를 유지했으니, 언론을 기피할 수밖에 없었다. 통상적으로는 정기적이거나 빈번한 기자회견을 개최해서 개혁안을 국민에게 홍보했어야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반면 비판세력인 이해집단 측에서는 언론매개를 최대로 이용해서 반대투쟁에 나섰으며, 그들은 로비역사상 최고금액인 3억불이라는 거액을 사용했으니, 이 액수는 양당이 대통령선거전에 쓴 총액의 두 배나된다.

여러 반대세력은 제가끔 텔레비전 광고를 내거나, 신문잡지에 광고를 게재하거나 또는 직접 국민에게 우편물을 통하여 반대투쟁을 전개했다.

전국독립기업가연맹(NFIB)은 4만명 회원을 동원시켜 각자 지역의 국회의원을 포섭했다. 그들은 끈질기게 의사들을 설득시켜 힐러리한테 푸대접받은 AMA를 반대편으로 유도했다. 그리고 Employer mandate(기업주의 의무)를 찬성하던 상공회의소에 압력을 가하고, 회원인 자기의 회비를 내지 않음으로서, 결국 상공회의소도 반대진영에 합세하게 되었다.

로비광고 중에서도 시청자의 주목을 끌었던 CNN 의 'Harry & Louis' 는 국민에게 의료개혁에 대한 불안과 불신을 가중시키는 점에서 유명했다. '해리와 루이스'는 텔레비전광고의 부부 주인공으로 광고 스폰서인 의료보험계가 창안한 가공인물이며, 개혁반대를 국민에게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식사중 부부의 대화를 통해서 관료적이고 선택권이 제한된 의료개혁안의 나쁜 면만을 선전하는데 큰 효과를 얻었다.

펜실바니아대학의 연구팀 조사에 의하면 이러한 로비광고의 절반이상은 잘못되거나 허위사실을 국민에게 알리고있다고 한다. 가령 클린턴 개혁안은 의사선택권을 제한한다고 선전하고, 반면 현재 15% 라는 무보험자도 의사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클린턴 의료안의 비밀이 유지되는 동안 국민들은 이미 여러 그룹들이 의료개혁의 나쁜 점만 골라 과장해서 선전하는 로비광고에 세뇌된 것과 다름없었다.

결과적으로 이해집단에서 큰돈 쓴 보람이 있어 NHI를 꺾는 일에 성공했던 것이다.
정의파(힐러리 편)에서 보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셈이다.

- 의사와 클린턴 개혁안 -

의사단체인 AMA는 여태껏 미국의료정책에 대한 가장 강력한 압력단체였다.

AMA는 1940년대 트루먼 대통령이 시행하려든 의료개혁반대에 로비활동을 통해서 성공한 실적을 갖고 있다. 당시 의사들 대부분(현재는 40%)을 대표하는 단체였던 AMA는 오늘날 압력단체들이 취하는 모든 로비활동수법을 짜낸 장본인이라 할 수 있으며, 로비에 의해서 문제의 소재를 국민에게 어필하는데 성공한 최초의 단체이기도하다.

의사들은 현재 미국각지방에서 사회적 명사로 대접받고있는 터이며 그 발언권이 크고, 또한 의사그룹은 잘 조직화되어있는지라 주 정부나 의원들에 대한 영향력도 강하다. 이러한 AMA에서 클린턴 의료개혁안의 윤곽이 구체적으로 나타나자 여기에 대해 회원들 모두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의사들이 반대하는 주요이유는 관리의료(managed care)로 해서 의사들 수입이 줄어든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이 법안이 실시될 경우 의사자신의 진료자유가 보장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점 때문이다.

AMA는 과거나 현재 NHI 자체의 도입에 대한 지지에는 변함이 없으며, NHI 실시로 동반되는 제1차의료(primary care)의 중요성을 대찬성하고 있다.그러나 의사들은 무엇보다도 최근 제3자가 개입하는 '관리의료'가 의사의 직업적 독립성을 침범하고있는데 대해 큰 불만이며, NHI가 실시되면 정부의 통제로 독립성이 더욱 약화될 것이라 우려하고 적극 반대하고있다.

반면 NHI 중에서도 의료행위에 있어서 의사의 독립성침범 우려가 적은 단일지불제도(single payer system. 전번 제2장 참조)는 찬성하고 있는 터다.즉 의사들은 그들 수입감소보다는 NHI 실현방법에 따른 독립성유지여부에 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하겠다.

이상을 요약해보자면, '사회정의'의 기수 클린턴 부부가 앞장섰던 NHI 실현은 실패라는
고배를 감수해야 됐고, 실패로 이끈 원흉은 기업가와 보험계 그리고 의료산업계가 주동인 이해집단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클린턴 부부의 정치력 미숙과 부족에 연유했으며, 실패로 인한 희생은 국가체면과 저소득층 국민이다.

- 클린턴의 반격; 환자권리 법 제정 -

NHI 도입을 시도했던 의료개혁도 좌절된 마당에 클린턴은 실지회복을 위해 다른 길을 찾아 나섰다. 의료계세상은 잠깐사이에 보험계가 리드하는 관리의료(managed care)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관리의료'라는 것을 간략하게 정의하자면 "의료비 절약을 위해서 의료에의 접근 및 의료서비스 내용을 제한하는 제도"를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의료제한에 대한 국민의 불평불만이 일기 시작하였다. 여기에 클린턴은 1998년도 중간선거를 치르기 위한 포석으로 관리의료에 대한 국민의 뿌리깊은 불만에 어필하는 '환자권리법'제정을 정책으로 들고나섰다.의료보험계에서는 환자권리법에 의한 규제강화를 염려하며 이 법이 장차 대통령의 궁극목표인 NHI에 이르게 하는 과정이라 믿고 경계하고 있다. 즉 국민에 호감을 주는 이 법은 '토로이의 목마'에 불과하며 대통령의 목표하는 바는 NHI라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큰 정부'를 싫어하는 공화당은 원래 정부의 규제강화와 약자에 대한 보호로 오는 지출증대에는 조건 반사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지만, 여론의 지지를 받고있는 '환자권리법'제정에는 반박할 구실을 찾기 힘든지라, 이 법이 제정될 수밖에 없었으니 그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정보공개:
의료보험과 의료서비스 제공자(provider= 의사), 기관(병원 등)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할 의무.의사를 옛날 선생님이라 불렀으나, 지금은 법적으로 호텔직원처럼 서비스제공자라 칭한다. 환자는 의사의 졸업학교, 전문의자격 유무, 경험연수, 환자만족도 등을 알 권리가 있다).

2. 의료기관과 보험을 선택할 권리보장:
환자가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의사와 병원을 선택할 권리보장.

3. 응급처치를 '사전허가'없이 아무 때나 아무 곳에서 받을 수 있는 권리보장.

4. Informed consent(충분한 설명을 얻은 다음 환자의 동의)를 통해 치료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보장.

5. 환자의 존엄유지와 무차별:
인종, 성별, 성적문제, 보험유무 등으로 환자를 차별할 수 없음을 보장.

6. 환자의 의료정보에 관한 비밀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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