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타령

1993년 10월 '의료개혁초안'을 완성한 대통령 영부인 힐러리 '의료개혁작업 위원장은 백악관의 루즈벨트 실에서 대통령 경제문제 고문과 행정부전문가들 앞에서 발표회를 가졌다. 이날 힐러리는 그녀의 스타일대로 자신만만하고 이론정연하게 이 엄청난 분량의 초안을 설명해나갔다. 그러나 그녀의 설명이 끝났을 때 장내반응은 낸냉하기만 했다. 재무장관을 비롯한 몇몇 실무자는 혹시 영부인에게 실례될까봐 두려워하면서 조심성 있게 질문을 시작했으며, 차츰 이런 질문은 열을 올리고 공격적이 되면서, 대통령이 정치생명을 건 NHI(국민개보험)안의 기본내용과 법제안 방법을 둘러싸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 개혁안은 너무나 관료적이며 제시된 숫자가 사실과 다르고 또 재정적 뒷받침이 전혀 비현실적이라 평가절하 했다.힐러리 초안을 의회에 제출하기엔 너무나 문제가 많다는 점은 이날 모임에 참가했던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고 한다. 또 대통령 주변 인사들은 힐러리 안이 정계와 사회에서 수용하기 어려움을 예견했다.

그러나 힐러리는 자기 말만이 옳고 남의 의견은 모두가 잘못이라고 손을 저어가면서 오만하게 굴었다고 하며, 가장 중요한 시점에서 그녀의 방약무인함이 결정적으로 일을 그르쳤다고 참석자들은 훗날 평했다.상대방의 의견을 청취하려들지 않는 작업 팀에 대해서 회의에 참가했던 한 병원단체대표는 "당신들이 우리 의견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반대파가 될 수밖에 없다"는 발언에 대해 힐러리는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화내고 퇴장했다는 일화도 있다. 설명회 이전의 분위기로는 의료개혁이 의회에서 수정을 거쳐 통과될 가능성이 없지도 않았는데, 이 모임이 국가적 대사를 그르치는 계기가 됐다는 평이다.

힐러리는 이해그룹(기업가 보험회사 의료산업계)과 타협하려는 기색은 전혀 없이 일방적으로 그들을 비난하기만 했으며, 그 결과 그들은 3억불이라는 막대한 돈을 써가며 NHI를 반대하는 광고선전에 나섰고, 그 광고내용도 사실을 과장하여 국민을 불안케 했으며 의료개혁을 부결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나갔다. 이렇듯 여론의 변화에 따라 동조했던 공화당원들이 이탈하게되고 NHI 반대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Guarantee health coverage to every American 미국 전국민에 의료혜택 보장"이라는 클린턴의 사회정의를 향한 지상목표가 실패로 끝난 책임소재는 지난번 적은 여론의 향배가 명시하듯 61%가 의회(22%)와 이해집단 39%)에 있으며 그들이 비난대상이고, 클린턴(9%)과 힐러리(9%)때문이 아니라는 듯이 나타났지만, 전문가들은 힐러리의 존재와 애처가 클린턴의 잘못판단으로 NHI 기회를 놓쳤다고 평하고있다. 즉 힐러리 탓이란 말이다.

클린턴 취임 초기까지만 만해도 AMA(미국의학협회)는 의료개혁을 주장해왔으며, 보험회사들도 타협해보겠다는 자세였다. 그리고 기업가들도 개혁에 수반되는 그들의 몫(employer mandate: 고용주에게 종업원의 보험급부를 의무화하는 법)을 담당할 준비가 되어있었다고 한다.또한 보수적인 미국상공회의소(US Chamber of Commerce)도 천장 모르게 뛰는 의료비를 견제하는 길은 부득이 NHI에의 길 밖에 없다고 판단했으며, 여기에 일부 공화당의원들이 찬성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클린턴이 해야할 일은 이해상반되는 그룹들과의 접촉과 타협을 모색하고, 일부 공화당의원의 호응을 얻어 NHI 통과를 위한 정치적 다수세력을 구축하는 일이어야 했다. 그리고 이러한 타협적 중도적 의견이 대통령 주변에도 있었다.백악관 비서실장(McLarty)은 광범위한 여론을 수렴해서 공화당과 기업가들이 싫어하지 않을 원만한 타협안을 다시 작성해서 의회에 제출할 것을 대통령에게 건의했으나 클린턴은 힐러리와 그녀 주변의 진보세력의 말에만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백악관내의 반대여론을 의식한 힐러리는 이 거창한 작업을 중도파를 제외하고 비밀리에 진행시켰으며 비밀보장을 위해 주말에만 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이 비밀주의방식에 대해 미국의 의사협회에서 법정소송을 제기한 결과, 작업 팀은 일을 공개리에 진행해야한다는 판결을 얻어냈으나 백악관은 여기에 불복 상소했다.

그리고 힐러리는 노동자와 노인층 등 약자의 로비만을 크게 받아드렸으며, 공화당은 믿을만한 곳이 못된다고 해서 중도파 권고를 무시했고 "약자를 위한 정의감"에 입각한 자기 안을 고집했다. 여론조사에서 과반수 미국국민이 의사들을 못 믿는다고 해서, 힐러리는 원래 자기편이었던 AMA를 "성불구자 기관"처럼 따돌렸다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다.

마지막순간에 가서야 클린턴 작업 팀은 AMA 및 산업계와 협조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지만 때는 이미 늦었었다.초기에 타협안을 찾아내려고 적극 협력한바 있는 공화당 온건파 Chafee 의원조차 94년 초 재교섭하려는 힐러리의 요청을 거절했을 정도니 말이다. 민주당동료인 상원재정분과위원장 모이니한(Moynihan)의원도 작업팀을 불신하며, 미국에 의료위기는 없으며 의료개혁이 시급한 문제가 아니라고 정부에 등을 돌렸다.

미국정책결정과정에서 특유한 민주적 상호비판 기구가 힐러리 존재로 인해서 잘 가동될 수 없었다는 것도 힐러리 비판의 초점이 되었다. 그 첫째로 미국에서는 백악관과 의회, 그리고 행정부는 제가끔 독자적인 의견을 갖고서 경우에 따라 서로 대립하면서 토론하고 일을 진행시키는 사례가 드물지 않으며, 정책결정과정에서 배후교섭이 중요역할 하는 수도 많다.

그리고 미국식 '최후수단'은 최고결정권자(Top decision maker)인 대통령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의료개혁에 관한 한 힐러리 존재 때문에 이러한 수단을 강구할 수가 없게되었다.그 이유는 가령 클린턴과 통하는 어떤 인사가 대통령침실에 직통전화를 걸었어도 그 전화를 힐러리가 받아 답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즉 힐러리 등용으로 인해서 대통령에게 바른말로 직언하는 길이 막혀진 거나 다름없었다. 설사 대통령과 접촉이 성공했어도 힐러리가 영도하는 '의료개혁 작업 팀'을 비판하는 일은 대통령에게 "당신 측근" 대신 "당신 처"의 잘못을 탓하는 부담을 가진다.

다음은 의회심의과정에 있어서도 해야할 토론을 힐러리 때문에 삼가야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의회의 법안을 위한 공청회에서 증인과 의원들간에 의례 격론이 벌어지는 일이 통례인데, 의료개혁심의 때는 힐러리에게 함부로 따지고 대결할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한다. 가난한 무보험자의 권리를 대변하며 약자를 위해 바른말만 하는 '정의의 투사'인 힐러리에게 논리적으로 비난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서 가령 "힐러리 당신의 이상주의는 아름답지만 그 재원은 무엇인가?"하고 따지고 공격하는 일은 신사적이 못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어느 병원대표는 "공중 앞에서 약한 여성을 공격하거나 궁지에 몰아넣는 일은 남자로서 하기 힘들다"고 진실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들은 마스콤에 방영될 자신들을 의식하면서 힐러리에 대해서 항상 신사도를 유지하려하니 말조심해야되고 따라서 충분한 논의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대통령으로부터 의료개혁안 작성을 위임 맡았던 의료경제학의 대가 Magaziner박사에게도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유명한 학자에게 흔히 있듯이 유아독존적인 면에서 힐러리와 짝이 맞아 자기네 주장만 고집했다고 한다.이들 작업 팀은 과거 몇 년간이나 의료개혁문제를 심의해온 의회전문가들 보다 방금 일 착수한 자기네들이 일을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쳤으며, 반대인사는 팀에서 제명시켜 그들 주장만을 담은 완전무결한 계획을 세우려고 전념했던 것이다.

그 결과 5백명 인사가 참여하야 5개월이란 귀중한 세월을 소모해서 1천3백4십만불($)의 비용과 43만불의 법정비를 써가며 열성적으로 일한 작업은 실패로 끝났으니 그 이유는 타협을 모르는 자만심 넘친 힐러리와 닥터 매가지너 때문이라는 중론이다.

대통령취임 후 바로 의료개혁을 위해 힐러리를 위원장에 임명하면서 "미국국민 여러분은 몇 달 내로 여러분의 퍼스트-레이디가 얼마나 훌륭한 여성인가를 알게될 것이다"라고 자랑했던 것처럼 힐러리를 앞세워 NHI를 성취시키려던 꿈은 바로 힐러리 때문에 실패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정부내의 중도파는 힐러리 팀을 월남전에서의 군사령관에 비유하기도 했다. 즉 그들 팀의 논리는 "촌락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촌락을 완전파괴 해야한다" 는 식으로 작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반대파를 파괴일변도로 몰아 부치는 수법을 사용했으니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클린턴은 각 계층을 망라한 타협의 정치를 외면하고 의회를 통한 입법과정을 과소평가 하면서, 사회정의감에만 집착한 정조관념 강한 힐러리의 의견에 의지한 나머지 그의 혁명공약이 수포화 돼버린 거나 다름없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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