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세계 인구의 5%에 불과한 나라지만 자원이나 국가 경쟁력 측면에서는 단연 최고의 선진국이다. 이러다 보니 미국의 정치나 경제, 그리고 제도와 관행 하나하나가 세계적인 관심 사항이다. 특히 의료 부문에 있어서도 미국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이다. 그동안 노벨 의학상 수상자의 절반을 미국이 배출했고, 1인당 의료비 역시 다른 선진국과 비교도 안될 만큼 높다. 그러나 미국은 의료비를 포함한 모든 면에서 세계 제1의 의료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지만 `의료성과' 측면에서는 선진국 대열의 최하위권에 있다는 분석이다. WHO가 발표한 지난해 자료에 따르면 미국인의 건강수명 서열은 세계 37위로 처져 있다. 이는 막대한 의료비를 지출하면서도 의료의 효율적인 성취 효과가 미흡했다는 분석이다.

세계 최고의 선진국을 자부하고,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미국이 유독 의료부문에서 효율성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 나아가 최근 미국 정부가 의료의 효율성 제고와 의료보장 확충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도 궁금하다. 이에 본지는 미국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재미의사 김일훈 박사(내과전문의, 서울의대 1957년 졸업·사진)가 보고, 분석한 미국의 의료체계를 지상에 중계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높이고자 한다.<편집자 註>

세계 인구의 5%밖에 안돼는 미국에서 노벨의학상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미국의학은 질적으로 세계 제1이며, 양적인 면에서도 미국의 총 의료비 및 1인당 의료비는 다른 선진국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금액을 나타내고 있다. 아랍 왕들이나 한국재벌을 비롯한 세계의 부호들은 건강진단이나 병 치료를 미국에서 받는 것이 관례로 되어있으며, 한국의 많은 상류층인사들도 한국서 가능한 의술일지라도 미국의 병원을 이용하고 있다.

이렇듯 외견상 다른 나라에서 선망의 대상으로 되어있는 미국의료는 남모르는 모순과 고민을 안고 있다. 'WHO Report 2000'에 의하면 미국은 건강수명(Disability Adjusted Life Expectancy, DALE)서열이 세계 24위다. 1위는 일본이며, 대부분의 선진국은 상위권(20위 이내)에 속하나 한국은 51위다. 또한 놀랍게도 의료의 '효율적 성취 성과' (performance)는 미국이 37위로 선진국대열의 최하위권에 놓여있다(한국 58위).

`의료성과' 점수가 낮다는 것은 의료비를 포함한 모든 면에서 세계 제1의 자원과 실력을 가진 미국이 건강수명 의료균점 국민건강상태 등에 있어서도 그에 합당하게 그 성취도가 단연 선두주자라야 하겠으나, 결과에 나타난 실적은 낙제점에 가까운 숫자라는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미국국민(특히 일부 소외층)은 나라의 실력에 비해서, 그리고 국가가 지불하고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료의 효율적 성과'면에서 뒤처진 미국 서열이 바로 미국의료의 모순을 나타내고있으니, 그 주된 원인은 국민개보험이 아직도 실시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다민족국가인 미국은 불법이민자 6백만 명을 포함한 많은 그늘진 곳의 주민과, 여러 종류의 이단자(게이족속·알콜 및 마약·중독자·에이즈·흡연자 증가 등)를 비롯한 단일화하기 힘든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의료정책 시행에서 안고 있는 큰 고민이다. 다른 선진국 즉, 유럽이나 일본 등 단일민족국가와 경쟁하기 힘든 많은 불리한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비근한 예로 아메리칸 원주민과 일부 흑인에게 흔한 비만증은 당뇨병과 고혈압을 동반하는 일이 많으며, 병 치료를 위해서는 그들의 전통적인 습성과 식생활문화부터 고쳐나가야 하는 어려움 등이 있다. 아무튼 `다양성 가운데 통일'(E PLURIBUS IN NUM)은 현대 미국이 지향하고 있는 하나의 자랑스런 이념이기도 하나,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힘든 고비가 허다하다는 점에서 다민족사회 미국의 꿈과 더불어 고민이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미국의료의 치부, 즉 가장 돋보이는 결점은 미국이 세계 선진국 중에서 유일하게 국민개보험(National Health Insurance, NHI)이 없는 나라라는 사실이다. 단연코 세계 제1의 의료수준을 자랑하는 미국국민은 현재 약 15%가 의료보험 없이 방치되어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의료개혁'이 클린턴을 비롯한 역대정권의 최대 정치과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미국 의료개혁의 최대목표의 하나는 무보험자의 수를 줄여서 없애는 일이며, 궁극적으로 NHI의 실현에 있다고 하겠으니 이 일이 바로 클린턴을 비롯한 역대 민주당정권의 최대 정치 과제이기도 했다.

부자나라 미국에 NHI 가 없어 약 4,000만명의 국민이 아무런 의료보험도 갖고있지 않다는 사실은 대외적 수치라고도 하겠다. 현재 미국국민은 약 85%만이 의료보험을 갖고있는 셈이며, 그들의 의료보험을 크게 2종류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하나는 정부가 관장하는 공적인 보험이요, 다른 하나는 민간보험이다.

첫 번째 정부가 베푸는 보험은 연방정부 프로그램인 고령자 대상의 국민의료보험 즉 `메디 케어' 와,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프로그램인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메디케이드'가 있다. 여기서 메디케어(Medicare)는 65세 이상의 고령자와 65세 이하의 불구자(disability) 그리고 신장 투석이 필요한 말기 신장질환자를 커버하는 프로그램이다. 다음 메디케이드(Medicaid)는 저소득자중에서 주정부에서 규정한 `복지수급자격'에 해당되는 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며, 무조건 빈곤층 전체를 커버하지는 않는다.

두 번째 민간보험의 대부분은 직장에서 가입하는 보험을 말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직장주가 종업원에게 의료보험 급부를 의무화하는 법적 규제는 없으며, 직장에서 받는 보험은 어디까지나 관행에 불과하다. 그리고 직장을 떠나면 자동적으로 보험도 상실되기 마련이니 미국의료보험제도는 그만큼 불안정한 제도이다.

다음은 대략 4,000만명의 방치된 '무보험자'의 내역을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무보험자의 1/3인 약 1,300만명은 저소득층에 속하면서도 위에 언급한 메디케이드의 '복지수급자격'에 해당되지 못한 빈민들이다. 수급자격 기준은 임산부나 아동에겐 후하지만 무조건 빈민층을 커버하지는 않는다.

둘째, 근로자중에서도 보험급부를 하지 않는, 주로 중소기업인 사업주 아래서 일하는 자와 그들의 가족이다. 그리고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돈이 있어도 만성질환이나 현재의 지병 때문에 보험에 신규가입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어떻게 하면 전 국민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해결 방안은 ▲보험에 가입할 수 없는 모든 저소득층에게 보험혜택을 주는 방법 ▲고용주를 통해 모든 근로자보험을 성취하는 방법 두가지로 집약된다.

국민개보험은 이 두 방법의 해결사라 할 것이나, 아직도 NHI가 없는 것이 의료대국 미국의 씻을 수 없는 수치이며, 장차 해결해야 할 정치의 선결문제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기할 일은 현 미국의 의료현실은 정치인들이 어떤 위기감을 가지고 긴급처리 해야 할 정도로 절박한 사회적 문제가 아니며, NHI 없이도 빈민층은 다방면의 도움으로 필요한 의료혜택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하니 미국국민의 의료혜택을 통계학적 평균치 숫자를 갖고서만 평가할 수 없으며, 의료의 성과를 평균치로 따진 서열이 현실적으로 세계 제1이라는 미국의 위상을 크게 손상시킬 일은 못된다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미국교육의 예를 들어 역대 일본수상 나까소네는 어느 집회에서 미국교육을 평가하기를 “미국은 흑인 멕시칸, 푸에르토리코인들이 많아서 지적수준의 평균치는 일본보다 훨씬 못하다”고 했다.

여기에 대해 노벨 과학상 수장자인 에자끼는 말하기를 “미국은 교육상 편차가 너무 큼으로 평균치는 별로 의미가 없다. 개성을 존중하는 미국교육은 일본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월등 우수하다”고 했다. 이 말을 바로 미국의료계에 적용시킬 수도 있으니 미국의료는 통계상 평균치라는 이름아래 여러 가지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다.

국민개보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전국에 산재한 주정부 및 지방정부에서 운영하는 많은 특수병원들과, 그리고 재향군인병원을 통해서 보험이 없는 소외된 계층들과 저소득 퇴역군인들은 만족할만한 혜택을 받고있다. 뿐만 아니라 사립병원에서도 무보험자의 응급치료는 법적으로나 인도적으로 거절될 수 없으며, 이럴 경우 메디케이드 혜택을 못받는 빈곤층환자의 의료비는 결국 의사의 무료봉사와 병원의 자선사업비로 충당되기 마련이고, 일반 개업의들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봉사하는 일이 많다.

- 私보험 未가입 자영업자 病나면 '파산' -

한편 한국교포를 비롯한 영세자영기업인은 힘에 겨운 보험료절약을 위해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이들이 부득이 병원신세를 질 경우는 그들 재산을 날리기 십상이다. 미국에서 재산을 가진자에겐 자선의 손은 고려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전과 2차대전 참전용사들은 이미 70~80대의 고령자가 되었으며, 이들 중에서 저소득자와 일부 중산층은 연방정부에 소속된 재향군인병원을 충분히 이용하고 있다. 연방정부내의 독립부서인 DVA(Department of Veterans Affair, 재향군인담당부)의 연간 의료예산은 170억달러이며, 이는 한국정부 복지부예산의 3배를 넘는 액수이고, 이 부처에서 전국에 산재해있는 170개의 재향군인병원과 376개의 진료소를 관리하고 있다. 미국보건복지부내의 1국인 인디언보건담당국(The Indian Health Service)에서는 140만 명의 원주민 인디언의 건강문제를 담당하고 있으며, 그 산하에 있는 40개 병원과 100개 이상의 의료시설에서 인디언에 대한 병원과 외래치료, 예방 및 재활치료, 지역위생 등을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주 정부병원(도립병원) 92개, 시립병원 및 지방(County)병원 1,390개가 있고, 이들은 종합병원이나 정신병원 등 특수병원으로 약 17만 병상이 있으며.며, 이곳에는 빈곤자와 무주택자인 급성 및 만성질환자, 정신병자, 마약 및 알콜중독자, 무의탁노인 등 무보험자들을 수용하고 있다.

미국은 이렇듯 나라에서 지원하는 많은 국공립 병원들과 각 지방에 산재한 보건소 등이 소외층과 무보험자 치료면에서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NHI가 바로 의료의 사회주의화임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일부 공화당의원들은 NHI 대신 위의 공중의료기관들(community health center)을 더욱 확장함으로서 무보험자를 도울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들 병원과 의료시설수가 차츰 줄고 있는 경향이니 NHI의 필요성이 더 절실해진다고 하겠다.

이상과 같이 NHI 없는 미국의료는 부조화 가운데서도 여태껏 조화롭게 잘 유지되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공화당과 일부 국민에게 NHI가 시급한 문제가 아니며, 국민의 합의가 이루어지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도 하겠다. 그러나 NHI는 세계적 추세요, 언젠가는 성취되어야 할 미국의 당면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면 왜 NHI 실패로 끝났으며, 미국정부에서 NHI의 성취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왔는가를 한번 살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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