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존엄사' 현황

근래 화제가 된 책 `집에서의 죽음'(Dying at home- Andrea Sankar 지음) 이라는 이름을 따서 `집에서 죽는 옛 전통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미국 일부에서 일어나고 있다. 옛날에는 죽음이 임박한 환자에게 의사의 역할이 별수 없었음으로 집에서 죽을 수 밖에 없었으나, 우리세대에 들어와서는 현대의학 덕분에 웬만한 질환은 치료혜택을 볼 수 있게됐으니 모두들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첨단과학의 의료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현시점에서는 환자들, 특히 말기의 노인환자들은 죽을 適期(적기)를 놓쳐 기계 힘으로 연명하게되고 결과적으로 과다치료 때문에 도움보다 고통만 더 받다가 죽게되는 일이 많게되었다.

즉 의학의 발달로 해서 우리 현대인은 장수와 건강이라는 큰 혜택을 누리게 됐다지만, 과학에는 한계가 있어 노후에 죽을 때는 그것으로 해서 해를 볼 수도 있게 됐으니, 여기서 `죽을 때는 집에서'라는 운동이 생길 법도 하다.

그래서 다음에 언급하겠지만 요즘 하스피스(Hospice Care, 표 참조), 그리고 Liberal pain control (충분한 진통진정제사용)이란 말이 주목을 받게된 것이다.

<표> 말기환자의 선택사항


▶Advance Directive(의료 지시):장차 판단능력이 없어질 때에 대비해서 치료에 관한 자기소원을 적은 진술서. 생전유언과 같음. 여기서는 특히 의료대행인 지명과, 소생술 거절등 원하지 않는 의료문제에 언급함

▶Comfort Care(편안 요법):환자를 편안하게만 유지하는 치료. 즉 진통과 정신적 안정을 통해서 QOL(삶의 질)을 호전시키는데 치중한 보수적인 치료)

▶CPR(심장 소생술,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환자의 심장이나 호흡이 멈추었을 때 소생시키는 응급조치.

▶DNR(소생술 거절, Do Not Resuscitate):CPR을 하지말라는 지시.

▶Healthcare proxy(의료문제 법적 대리인):Medical POA와 같음. 의료문제에 관한 법적 대리인으로 지명된 자.

▶Hospice(하스피스):병의 치유보다는 `편안한 상태' 유지에 중점을 둔 고식적 요법.일반적으로 치유와 무관한 하스피스 요법을 선택한 자는 대개가 여명이 6개월 미만인 환자이며, 미국에서는 하스피스가 환자 집에서 시행되는 일이 많다.

▶Medical POA(Power of Attorney):Healthcare proxy와 같음.

▶PAS(Physician-assisted suicide, 적극적 안락사):의사가 주는 치사량의 약 도움으로 죽는 자살.

▶Terminal sedation(말기의 지속적 진정):말기환자에게 죽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진통제 투여를 해서 무의식상태로 진정시키는 요법.


타임지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인 10명중 7명은 집에서 죽기를 원하나, 실제로는 의료기관(병원 양로원 등)에서 죽는다고 한다. 그리고 병원 환자의 1/3 은 죽기 전에 적어도 10일간 ICU(Intensive Care Unit 중환자 실)에서 치료받으며, 그중 절반은 인공호흡기에 매달려서 임종한다. 환자들은 낯선 의사와 간호사들 가운데서 외롭게, 그리고 계속되는 아픔속에서 막대한 의료비를 짊어지고 사망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환자의 3/5은 의사와 초면이며 1/2 은 아픔이라는 고문을 당하면서 죽고, 1/3 환자는 죽는 과정에서 막대한 의료비 때문에 가족들이 파산하게된다는 것이다.

PAS(Physician-Assisted Suicide, 의사의 자살방조=안락사, 표 참조)를 원하는 사람은 빨리 죽기를 원한다기보다 죽는 과정의 심한 아픔(고통)에서 벗어나고 가족과 사회에 대한 정신적 금전적 부담을 덜어 주려는 간절한 염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픔의 95%는 강력한 진통진정제의 힘으로 즉 Terminal sedation(말기 진통치료, 표 참조)으로 충분히 진정시킬 수 있는데도, 마약법을 두려워하는 의사의 조심성 때문에 말기환자의 절반은 고통이란 지옥을 헤매다가 죽는다.

미국의사들은 일반 환자에 대한 진통제 처방에 있어서도 대체로 불충분한 양의 약한 진통제를 선호하는 경향이니, 이는 환자의 습관성과 약 과다로 인한 죽음을 의식한 의사의 보신책 때문이기도 하다. 뉴욕의 신경과전문의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일부환자에게 적용되는 교과서적인 다량의 모르핀 투약을, 그들 전문의의 40%는 PAS행위라고 잘못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던 중 1999년 10월 미국국회는, AMA(미국의학협회)의 열렬한 지지 속에 `The Pain Relief Promotion Act'(진통치료 촉진법) 즉 의사들이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사망위험도를 높일 수 있는 일부 진통제의 처방을 허용하는 법을 가결했다. 이 법을 환영하는 AMA회장은 선언문에서 “우리는 PAS(안락사) 반대투쟁을 계속 다짐하는 반면, 의사가 환자의 아픔을 적극적으로 치료할 수 있게끔 허용한 이 법을 지지한다”고 했다. 아픔을 덜어주는 일은 가장 흔하고도 기초적인 의료행위라 할 수 있다.

환자상태를 기록하는 Vital Sign(중요 증후)은 TPR(T체온, P맥박, R호흡수)과 BP(혈압)의 4개이나, 미국의 일부병원에서는 `아픔의 도수(Severity of Pain)'조항을 추가해서 Vital Sign을 5개로 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PAS 아니고도 환자의 고통을 덜 수 있는 길은 터였지만, 남은 문제는 환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다.

즉 의식하던 아니하던 간에 죽는 순간까지 가족을 생각하고 돈걱정해야하는 인생사를 도와주자는 것이다.

최근에 와서는 환자집에서 하스피스에 의한 편안요법(comfort care, 표 참조)이 적극 장려되고 있으며, 그런 방향으로 되어 가는 경향이다. 한 통계에 의하면 말기환자의 하스피스 비용은 1일 $720 이면 족하나, 중환자실에서 치료받을 경우는 1일 $3,180이 소요된다. 여생이 6개월 미만이라 추정된 환자에게 메디케어(노인보험)는 하스피스 비용지불에는 관대하다지만, 여기에도 많은 제한이 있다.

지금으로서는 극히 일부의 병원환자와 약 30%의 요양원 환자가 하스피스 기관과 계약을 맺고 있으며, 90%의 하스피스 환자는 집에서 보수적인 Comfort care를 받고 있는 실태이다. 현재 미국국회는 메디케어의 하스피스 혜택과 사용을 증진케 하는 법을 추진중이며, 법이 실현될 경우에는 이를 원하는 노인들의 의료비는 국가보험인 메디케어에서 대부분 지출될 것이므로 죽을 때 적자유산이라는 부담을 가족에게 남기지 않고서 눈감을 수 가있다.

최선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치유될 가망이 없을 경우 의사는 환자에게 솔직히 차선의 대책강구를 권장해야하는데 그것이 바로 `Exit Strategy 임종대책'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환자에게 납득시켜야할 골자는 첫째 생전유언을 준비하여 본인의 소원을 명시할 일이며, 메디케어 지출액이 제한된 실정에서 개호보험(Long-Term-Care Insurance) 등 다른 추가 보험에 가입하는 문제와 더불어 하스피스 문제도 반드시 거론되어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PAS(안락사)의 법제화에는 실패했으나, 1976년 처음으로 '자연사법'이 통과되어 세계에서 가장먼저 Living Will이 법제화되었고, 20여 년이 지난 오늘날 미국의 모든 주에서는 Living Will에 따라 존엄사가 허용돼 있다. 그런데 아직도 미국인 10명중 한명은 자기의 원래 뜻이 아닌 과다치료 속에 죽어간다고 불만이라고 한다.

전번에 언급한바와 같이 65세 이상의 미국노인의 55%는 생전유언을 갖고 있으며, 이것이 없는 경우는 대개의 주는 가족의 의견을 존중하고있다. 그러나 불치의 말기환자(Terminal and non-curable)가 될 때에 대비해서 연명의료 등의 과다치료를 원치 않는 사람은 반드시 생전유언을 준비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생전유언을 Advance Directive, 표 참조)라고도 부르며, 여기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 자기가 원하는(원치 않는) 의료사항의 명세서를 작성할 것이며 그 내용은 DNR(소생술 거부, 표 참조), 인공호흡기 등 기계보조, Tube Feeding(관을 통한 인공적인 영양공급)여부가 주며, 극단적으로는 혈관주사나 항생제투여 여부를 명시하기도 한다.

둘째, 임종시 의료문제 결정에 있어서 자기를 대신해줄 사람, 즉 POA(Power of Attorney, 표 참조) 또는 Health Care Proxy(표 참조)를 정하는 일이다.

이때 대리인은 배우자, 변호사나 친지 중에서 고르는 것이 상례다.

존엄사 즉 `연명의료를 원치 않는 죽음'에 대한 여러 여론조사결과 미국인의 80% 이상이 찬동하며, 유럽에서도 BBC 조사(정신과 의사대상)에 의하면 찬동이 83% 이고 반면 안락사는 60%가 반대한다. PAS를 결사 반대하는 AMA는 `존엄사'를 적극찬성하고 있으며, 미국사회윤리의 본고장인 기독교계에서도 존엄사를 선택할 권리를 인정하고있다.

즉, 각 교회는 존엄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연명의료'는 도움보다 해를 더 줄 수 있는 `과다치료'이기 때문에, 위험성이 있거나 부담을 줄 경우 크리스천은 이를 거절할 권리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환자가 먹고 마시게끔 도와주는 일은 인간의 기본간호에 속하나, 인공적인 영양공급(Tube Feeding)은 기본간호의 영역을 넘어 과다한 의료행위가 된다고 규정했다. 이렇듯 존엄사는 많은 미국국민의 지지를 받고있으며, 각주마다 생전유언의 법제화가 마무리됐음을 알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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