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thanasia(안락사)란 용어는 고대 희랍어에서 유래했으며 유럽에서 그대로 사용되어온 말이며 `자살방조'(assisted suicide)라는 뜻이 담겨있다.

안락사는 Euthanasia를 일본말로 번역한 것으로 한국에서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최근의 한국어사전에 나온 풀이를 보면 “살아날 가망이 없는 병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이다.

한국에서는 `안락사'란 여태껏 생소했던 말이었으며, 필자가 갖고있는 50년 전의 우리말 큰사전(한글학회 지음)과 최근 북조선서 발행한 조선말대사전, 그리고 중국고전이나 중국어사전에는 안락사란 어휘가 없다. 말하자면 `안락사'는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시기나 전쟁과 굶주림 등 불안한 시대에는, 즉 자나깨나 죽어서는 안되고 악착같이 살아야한다는 의욕이 강한 상황아래서는 필요 없는 말일 것이며 고령사회에 들어선 풍요한 세상에서만 찾게되는 용어라고 할 수 있겠다.

미국과 한국은 물론 모든 선진국은 장수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렇듯 우리주변에 밀어닥친 고령화사회의 물결로 해서 현재 미국엔 65세 이상의 노년층이 4,000만 명(15%)이나 되며 2030년대에는 노인인구가 25%로 늘어날 전망이다.

현대의학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암과, 심한 동맥경화증 등의 질병이 항상 노인층을 침범하고 있으며, 이러한 질병이 진행되면 기동도 못하고 고통받는 달갑지 않은 여생을 침상에서 보내야만 한다.

설상가상으로 노령기에 발생하는 치매병은 장수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75~85세 노인은 5명에 1명, 85세 이상은 2명에 1명이 이 병에 걸릴 운명에 놓여있으며 그리되면 QOL(삶의 질)이 전적으로 결여된 무의미한 인생의 말년을 수치스럽게 보내야만 한다. 역사적으로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우리 한국인의 바람직한 죽음은 5복중의 하나인 `考終命(고종명)이란 자연사이다.(의학신문 필자의 글 참조)

그러나 옛날의 자연사는 단시일 내에 끝장나지만 지금은 문제가 다르다. 광범위한 최신 항생제 덕분에 반복되는 웬만한 감염은 치유되며, 여러 가지 심한 합병증도 특수치료와 기계의 힘으로 순간마다 고비를 넘길 수가 있다. 그렇다고 병이 근본적으로 낫거나 치유되는 게 아니라, 재발과 치료라는 두 고통을 되풀이해가면서 연명하는데 불과하다. 이렇게 해서 장시일 고통 끝에 결국 죽기 마련이니, 이것은 결코 옛날에 말하던 자연사가 아니며 물론 `고종명'하는 것도 아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고령화사회의 노인에게 많기 마련인 불치병환자들은 비 생산적인 치료로 인해서 QOL 없고 고통만 되풀이되는 삶을 연장할 뿐이며 현대의학의 덕을 크게 보지 못하니, 옛날 노인들보다 훨씬 못한 죽음을 감수해야만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있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역설적인 문제의 해결사로 `안락사'문제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사회에 대두하기에 이르렀으니, 물론 한국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안락사 정의를 여기서 다시 해보자.

안락사의 대상은 고통받고있는 환자 중 현대의학지식과 최신의료기술로서는 치유 불가능한 병을 앓고 있으며, 가까운 시일 내에 죽음이 확실하다고 판정된 자, 즉 Terminal and non-curable patient이다. 이러한 대상에 대해서 환자의 죽음을 앞당기게 하는 의학적 처치결과의 죽음이 안락사다. 그리고 이 과정에는 유서를 비롯한 환자자신의 의사가 절대적으로 존중되어야 하니, 안락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점은 `고통에서의 해방'과 `본인의 의사 존중'이란 두 가지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안락사에는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의 둘로 나눌 수가 있겠으니, 그 차이점은 죽음을 앞당기게 하는 의학적 처치가 적극적인가 또는 소극적인가에 달렸다. 적극적 안락사는 의사의 치사량 약 투여 등으로 죽음을 급속도로 유도하는 의사의 `자살보조 행위'를 말한다. 여기서는 자살을 포함한 `사람의 죽을 권리'를 인정하는 것으로 환자가 말기의 절망적인 병고와 싸우고 고통받으면서도 죽을 에너지도 없는 상태에서, 그를 대신하야 의사가 그의 평소 소원을 받들어 죽음을 도와 고통에서 해방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안락사를 법제화하는데 아직도 사회적 분위기가 성숙되지 않아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기 힘든 현실이다.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네덜란드와 미국의 오리건주를 제외한 세계각처에서는 촉탁살인과 수락살인죄로 형사적 책임을 묻고있다. 뿐만 아니라 의사의 자살방조는 그들의 성서라 할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나오는 다음 구절에도 위배된다. “아무 환자에게도 치사량의 약을 투여치 않을 것이며 그러한 요청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상담도 아니할 것이라-I will give no deadly drug to any, though it be asked, nor I counsel such”.

안락사란 이름과는 달리,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안락사는 `소극적 안락사'이며 이는 `간접적 안락사'라고도 부를 수 있고, 요즘 와서는 '尊嚴死(존엄사)라고 흔히 말한다. 존엄사는 한 마디로 말해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며 맞이하는 죽음' 이며, 구체적 방법으로 `의료연명 거부권' 또는 `생명유지치료거부권'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심한 아픔으로 고생하는 암 환자와 같은 말기환자들과 회복희망 없이 죽음을 기다리고있는 식물인간환자들, 그리고 치료해도 회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중환자들에게 결과적으로 환자목숨만 연명케 하는 `연명의료'의 시술을 중단시켜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하며 죽게 하자는 것이다.

`연명의료'라는 것은 Tube Feeding(관을 통한 영양공급)과 인공호흡을 주로 한 여러 외부 기계장치에 의한 시술은 물론, 항생제를 포함한 환자가 원하지 않는 모든 의료행위가 포함될 수 있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연명의료 거부권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은 1976년 뉴저지주의 카렌(Karen Quinlan) 사건이며 이 사건에 비롯해서 미국사회에 `존엄사'와 `죽을 권리'란 말이 화제가 되기 시작했다. 21세의 여자 카렌은 알코올과 약 과다복용으로 호흡곤란을 일으켜 인공호흡기에 연결되어 연명되었다. 식물인간이 된 딸을 보고 그의 아버지는 참을 수 없어, 인공호흡제거를 위한 소송을 걸어, 처음 지방법원에서 졌으나 결국 뉴저지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존엄사' 운동은 인권운동과 함께 요원의 불같이 전 미국에 퍼져, 같은 해(1976년) 캘리포니아 주에서 “생전의 의사표시인 Living will에 의해 존엄사를 선택할 권리를 보장”한 “자연사 법”이 탄생했으며, 연달아서 미국 각 주마다 이와 유사한 취지의 법이 제정되었다. TIME 주간지와 CNN의 합동 여론조사에 의하면 65세 이상의 미국노인은 현재 55% 가 Living Will(생전 유언)을 갖고있으며, 그러함으로서 죽기 전에 자기가 받기 원하거나 원치 않는 의료를 명시함으로서 臨死(임사)시의 자기모습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모든 주는 Living Will을 전제로 존엄사를 인정하고 있으며, 생전유언이 없을 경우에는 지속대리권(Power of Attorney)과 가족동의가 큰 역할을 하나, 여기에 대해 법적으로 아직 미비한 주들이 있다. 이상과 같이 미국에서 존엄사 문제는 마무리 단계이고, 대부분 유럽선진국에서도 존엄사를 인정하고 있으며, 영국BBC서 정신과 의사를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존엄사(생명연장장치 제거)는 찬성 83%인데 비해 안락사 합법화 찬성은40%이다.

존엄사 파동을 한고비 넘어선 미국에서는 현재 안락사(적극적) 시비, 즉 의사들에게 적극적인 자살방조를 구하는 문제로 발전해가고 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워싱턴주 캘리포니아주와 오리건주에서는 `적극적 안락사' 즉 말기환자의 원에 따른 '의사의 자살방조인정 법'을 주민투표에 부친 결과 두 주에서는 부결되고 오리건주에서만 가결되어 1997년부터 안락사 법이 실시되고 있다. 그래서 미국 다른 주에서는 말기환자와 그 가족에게 주는 지침서에 “만일 의사도움으로 죽고싶으면 오리건주로 옮기시오”라고 적고 있다.

(If you want physician-assisted suicide, you'll need to move to Oregon, the only state in which Doctors may legally administer a lethal dose of medication. Hawaii considers legalizing it next year.) 1만3,000명 회원을 가진 미국 `크리스천 의사 치과의사 협회'에서는 오리건주에서 시작한 `안락사' 법에 대해 전국적인 반대투쟁을 전개하고 있으며, AMA(미국의학협회)에서도 1999년 국회에 `살인 방조 금지법'을 제정할 것을 건의하고, `안락사'법이 다른 주에 퍼지는 일을 예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미국 미시간주의 의사 케보키언(Kevorkian)은 약물과 자살방조장치를 사용해서 말기환자 120명을 죽음으로 인도했으며 그 결과 그는 살인자로 기소되어 유죄판결 받고 복역중이다. 이 사건을 두고 타임주간지는 케보키안을 `20세기동안 주목할만한 인물의 하나'로 꼽았다.

미국국민여론은 그의 살인죄에 대해서는 거부적 반응(66% 반대)이지만 살인 방조에 대해서는 아직도 다수의 찬동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현 시점에서는 안락사를 합법화할 수 있는 날은 여론조사의 지지도가 80%에 이르는 때가 될 것이고, 그때 가서 절충안을 찾아 `적극적 안락사'가 실시되리라는 전망이다. 현재 `안락사 선진국'을 자랑하고 있는 네덜란드는 지난 20년간 다수국민의 찬성아래 법원에서 안락사를 실질적으로 허용해 왔고 그간 몇 천명의 말기환자가 안락사 했다고 하나 1993년 제정한 시행령에 있어 28개의 요건을 지켜야하는 엄격한 법적 제약을 받고 있었으며 자칫 잘못하다가는 의사가 살인방조죄에 걸려 12년형까지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지난 11월 28일 네덜란드 국회에서 `안락사 법'이 104 대 40으로 정식통과 되어 공개적으로 `의사에 의한 살인방조'를 허용한 세계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이 새 법 역시 많은 제약을 가하고 있으나 종전의 법에 비해 훨씬 덜 까다롭다고 한다. 이 법에 대해 교황청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범한다”고 비난했다. 현재 벨기에서도 안락사법안이 심의되고 있다고 전한다.

안락사 실시를 두고 많은 크리스천들은 위험천만한 법이라고 반발하고 있으며, 또한 안락사개념의 확대가 과거 히틀러의 `약자 도태'의 위험성도 안고있다고 말하는 반대파도 있어 미국 각 주에 안락사가 실시되기 위해서는 건너야할 많은 계곡이 아직도 가로막고 있다고 하겠다. 이상 안락사(적극적 안락사)와 존엄사(소극적 안락사)에 대한 미국현황을 대충 요약 소개해 보았다. 여기서 구태여 적극적인 것과 소극적이란 분류를 강조한
이유는 많은 한국사람은 물론 미국인도 소위 말하는 `안락사(Euthanasia)'내용을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에서 1970년대의 Karen 사건 당시 성인이었던 60대 이후의 사람들과, 오래 앓다가 떠난 노부모를 겪어본 사람에게는 `안락사'하면 의례 `존엄사'로, 즉 `연명의료의 시술중단' 결과의 죽음으로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이 문제에 관해 많이 들었거나, 또는 의사상담을 비롯해서 그들 자신 심각하게 관심을 가진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관심이 적었던 젊은이를 포함한 요즘의 일반사람들은 근래의 Kevorkian 사건과, 일부유럽에서 적극 거론되고있는 안락사문제기사 등 자살방조(assisted suicide)에 관한 언론보도지식 만으로 해서 `안락사'라면 `적극적 안락사'로 여기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요즘 미국에서는 안락사(Euthanasia)라 하면 보통 assisted suicide를 일컫는 반면, 우리가 말하는 존엄사는 1976년 캘리포니아주에서 제정한 `Natural Death Act'에서 보듯이 natural death로 표현하니 우리의 `자연사'와 비슷하나 그 개념이 좀 다르다고 하겠다. 그리고 영어의 'Death with Dignity'는 우리가 말하는 '존엄사'에 국한되지 않고 적극적 안락사와 존엄사를 합한 죽음을 뜻하며, 오리건주의 자살방조 법 명칭이 `Death with Dignity Act'이니 이것은 우리(동양)말과 영어의 표현방법에 큰 차이가 있어 더욱 혼동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앞으로 용어의 혼동을 막기 위해서는 필자가 소개한 바와 같이 좁은 의미의 `안락사' 와 `존엄사'로 엄격히 구분 지어서 사용함이 바람직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안락사나 존엄사를 위한 어떠한 학술 또는 민간단체가 있는지는 필자가 가진 문헌이 없어 잘 모르겠으나, 일본에서는 Karen사건에 자극 받아 1976년에 `일본 안락사협회'가 조직되어 `안락사'의 법제화를 추진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막상 그들이 추진하는 내용이 `소극적인 안락사'라서 1983년에 협회명칭을 `일본 존엄사협회'로 개정하기에 이르렀으며 존엄사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가 높아져있으나 아직 `생전 유언 Living Will'이 법제화가 돼있지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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