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수명' 일본 1위-한국 51위
'편안한 臨終' 인생의 마지막 福

고종명(考終命)은 유교에서 이르는 5복(장수, 부, 건강, 덕, 고종명)중의 하나로 제 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음을 말한다. 즉, 사고사(事故死)같은 비명(非命)에 죽지 않고, 늙어서 자연사하거나 또는 병들어서도 크게 고통받지 않고 죽는 것도 인생의 큰복의 하나라고 한다. 그래서 70세를 넘긴 분이 행복한 일생을 살다가 별로 말썽 없이 돌아갔을 때 이를 두고 호상(好喪)이라 부른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고령화(高齡化) 사회에서는 우리 주변의 많은 노부모들이 육체적 정신적 장애를 동반한 채, 고통스럽고 달갑지 않은 여생을 보내고 있음을 목격한다.

WHO에서는 금년(2000년)들어 `건강수명'이란 새 용어를 도입했는데, 이는 '평균수명'중에서도 `건강한 상태로 사는 기간'을 말한다. 여기서 일본은 건강수명이 세계 제1위인데 비해 한국은 51위임을 알려둔다. 중병가운데서도 주위 사람에게 가장 보기 딱하고 가족에게도 지겨운 병은 치매병이다. 치매병 발생은 나이에 비례해서 증가한다. 따라서 우리는 75세~84세에는 5명중 1명, 85세 이상 되면 2명중 1명 꼴로 치매병 환자가 될 운명에 놓여있다.

미국엔 현재 400만명의 치매 환자가 있으며, 뾰족한 예방법이나 치료법이 생기지 않는 한 50년 후에는 환자 수가 1,400만명이 되리라는 예측이다. 여기에다 중풍과 같은 치매병에 준하는 만성질환을 가산한다면 고령화사회는 암흑사회를 연상케 한다. 선진국에 밀려 닥친 고령화의 물결로 인해 2030년 미국은 65세 이상의 노인이 미국 인구의 25%를 차지하게 된다.

그래서 클린턴 미국정부는 역사상 처음으로 `고령화문제 전문직'의 차관보 자리를 마련했을 정도다. 이렇듯 침울한 인생의 말년을 해결하려고 일부 극단론자들은 `안락사'를 주장하지만 아직 법적으로 받아드릴 단계에 있지 않다. 그러나 뜻 있는 대부분의 미국인은 노후 여러가지 불치병에 대비하여, 자신에게 불행이 올 경우 `과다한 치료'를 하지 못하게 하는 유서를 미리 준비하고 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원래의 `고종명'은 조심스런 삶으로 해서 비명에 죽지 않는 복을 말했으나, 현대적 `고종명'은 너무 오래 살아서 노망하기 전에 죽는 복이라 할 것이다. 나는 지난 2월 서울에서 87세 노모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갔으나 임종하지 못했다. 모친은 관절염과 당뇨병 합병증으로 기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집에서 간병사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지고 숨이 차서 응급차로 X대학병원에 갔는데, 젊은 의사가 생명이 위독하다면서 제 멋대로 `인공호흡기'를 연결시켰다고 한다. 연락 받는 순간 나는 화가 나서 울었다.

숙환으로 고생하던 90세 노인을 기계로 농락하다니, 그곳 의사의 상식 없는 판단에 실망했다.일단 연결된 호흡기를 떼려면 가족 전체가 동의해야만 된다고 했다. 나의 강요(전화)에도 불구하고 그곳 가족들은 갑론을박으로 결정 짓지 못했다. 평소 관심이 적던 가족일수록 치료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경론을 폈다. 그 결과 내 어머니는 기계에 매달려 흉한 모습으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한국사람은 최선을 다해서 끝까지 효도했다는 자기만족을 먼저 찾아, 기적을 기대하면서 당사자의 고통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감성 보다 이성(理性)에 호소하는 나는 미국인인 탓일까? 생시에 `복' 많다던 내 어머니는 마지막 福 `고종명'을 외면한 채 돌아가셨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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