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70 고래희' 라는 두보(杜甫)의 유명한 시를 따서 70세를 고희라 한다.

사전을 찾아보면 환갑이 '나이 61세 즉 만60세' 이고 고희는 '나이 70세'로 적혀있으니 고희는 엄격히 따져서 만 69세를 말한다. 그러나 요즘 관례로 만70세 때 가서 고희잔치 지나는 일이 많다. 과거 환갑이면 산전수전 모두 겪고 이겨내어 긴 인생을 살아온 건강하고 복 있는 영감이라 해서 큰잔치를 베풀었으며 나머지 인생의 목표가 고희까지 장수하는 일이었다.

70세까지 장수하는 노인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던 옛날에는 그때까지 장수함을 사람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라 해서 70세를 천수(天壽)라 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아시안 계의 평균 예상수명이 82세이고 보면, 한인 교포도 남자는 80세, 여자는 85세까지 살 수 있는 확률이 높다.

만65세는 한국족보(돐, 환갑, 고희 등)에 없는 희미한 나이이지만 미국에서는 노인(Senior Citizen)이 되는 법적 연령이다. 만 65세는 사회에서 바람직한 은퇴연령으로 공인되어왔고 또 이때가 되면 연금혜택을 정식으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30년 후, 즉 2030년이 되면 65세 이상의 인구가 미국전 체 인구의 20%를 차지할 것이고 따라서 연금혜택 나이도 차츰 올라, 그때 가서는 만69세(고희)까지 올라갈 전망이다.

그렇게되면 옛적 최장수 연령인 고희=천수가 공인된 은퇴나이로 격하될 것이 뻔하다.이렇게 보면 노년기는 과거엔 60(환갑), 현재는 65(연금혜택연령) 그리고 머지않아 69(고희)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나와 같은 60세 이상의 연령층에서는 짧은 인생에 노인장립식을 세 번 갖게되는 셈이다.요즘 60이면 사회활동을 한창 할 나이이므로 환갑잔치는 조로(早老)했다는 자랑인 듯 느껴져 연회를 치루는 사람이 극히 드물며, 대개가 가족파티로 끝나는 일이 많다.

나의 경우를 돌이켜보면 조용하게 환갑을 무사히 넘긴 것이 다행한 일이었다.

우리건강은 60대가 고비이기 때문이다. 심장 혈관질환이나 암 등으로 희생되는 일이 가장 많은 60대를 지나면, 70이후는 평균수명을 기대할 수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현재의 기준으로 말하자면 사회에서 공인하는 65때 큰잔치를 해야할 것이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65세는 우리족보에는 없는 나이일 뿐 아니라, 우리한인들은 이 나이에 활동하고 있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수명이 80대로 연장된 현시점에서, 건강한 사람은 고희전후해서 은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두보가 곡강(曲江) 이란 시에서 읊은 "인생 70 고래희"는 염세증을 토로한 시로 "아무리 오래 살아도 70세까지 장수할 수 없는 인생인지라 빚을 내어 술이나 실컷 마시면서 살자"는 퇴폐적이고 비관적인 내용이 담긴 글이다.

IMF 한파 이후 한국에서는 젊은 나이에 실직하고 또 60세 전후해서 퇴직해야만 했으니 슬픈 일이었지만, 이제 경기가 회복됐다니 다행한 일이다. 그래서 모두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고희까지 일해보려고 노력하는 줄 안다. 고희 전후해서 은퇴해도 즐거운 여생을 오래 오래 즐길 수 있으니, 고희는 본래 뜻처럼 비관적이 아니라 낙관적으로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노인이라 불리면서 부담 없이 대접받아도 무난할 것이다.

고희는 Lucky Seven의 7이 열 개나 되는 숫자이니 가장 복된 나이일 수밖에 없다.

동양 옛말에 70이 되면 종심(從心) 지경에 이른다고 해서 70세가 되면 내키는 대로 행해도 탈이 없다고 했다. 70세가 된다고 해서 성인군자 닮아간다는 법은 없다. 그러니 이 말은 "내가 내키는 대로해도 노인(70)이기 때문에 잘 봐준다"는 뜻으로 해석되었으면 한다. 경로(敬老)정신이 아쉬운 요즘 세상에 우리에게 필요한 말로 들린다.

노인, 즉 고희에 이르면 다음과 같은 많은 경축일이 뒤따른다.

희수(喜壽) 77세: 초서(草書)의 喜(희)는 七十七이 상하로 합침
산수(傘壽) 80세: 八(팔)자 여러개와 十(십)자가 합침.
미수(米壽) 88세: 八十八이 상하로 합침.
졸수(卒壽) 90세: 초서의 졸(卒)은 九十이 상하로 합침.
백수(白壽) 99세: 백(百)에서 일(一)이 빠짐.
다수(茶壽) 108세: 이십(二十 20)과 미(米 88)가 합침.

통계에 의하면 오늘날 미국에서 백세 이상의 장수자가 2만 명 이상으로 늘고있다.

(한국은 1천2백84명, 그중 남자 1백10명).나를 비롯한 요즘 노인들은 복도 많다.

최첨단의 문화생활을 만끽하며 최신의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시대에 살고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노익장(老益壯)해서 젊은 기분으로 살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제 환갑이 우리 족보에서 빠져야하고, 고희가 옛 환갑 격이 되어야한다.

그리고 진짜 고희는 다수(茶壽)를 향한 백세로 기대해 볼만하다.

- 끝 - 코리아 투데이( 2000년 7월호 게재 LA서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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