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한 CEO는 "CP(공정거래 자율준수프로그램)를 실천하기 위해선 생각보다 대단한 각오가 필요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고 했다. 이 회사는 몇 년전 사내 CP를 도입한 이래 몇년째 영업 성장률이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이 길이 국민신뢰를 회복하는 길이고, 국민신뢰 회복이 곧 생존을 위한 길이므로 되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했다.

제약협회 이경호 회장도 기회만 있으면 '뼈를 깎는 고통을 격더라도 리베이트는 뿌리 뽑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제약업계 스스로 '리베이트를 법대로 처리하라'고 정부에 요청 하기도 한다.

불과 몇년 전만 하더라도 의약품 거래에서 리베이트는 업계의 오래된 관행쯤으로 치부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2006년 주요 국내 제약 및 다국적 제약을 대상으로 리베이트 단속을 실시한 결과 단 한 곳의 예외도 없이 모두가 적발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적발된 업체들은 '무엇이 문제냐?'고 대들었고, '운이 나쁘다'며 억울해 했다.

그리고 리베이트가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지 말아야 겠다고 뼈속깊이 새기기 까지 많은 댓가를 치뤄야 했다. 공정위의 대대적 단속 및 처벌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6년 동안에 리베이트 약가연계법이 만들어 졌고, 쌍벌제가 도입 됐으며, 약가인하를 노린 각종 약가제도의 명분으로 리베이트가 활용됐다.

여전히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리베이트가 잔존하나 한풀꺾였다는 것이 다수의 전언이며, 그 끝이 머지 않았다는 희망섞인 전망도 나오는 것이 최근 상황이다.

복지부 손건익 차관의 18일 건강보험공단 조찬 특강에서의 리베이트 관련 발언이 제약업계를 크게 자극하고 있는 모양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특강에서 손 차관은 '리베이트는 잔인하게 끊어주겠다'고 했다. '잔인하다'는 '인정이 없고 아주 모질다'는 뜻이다. '흉폭한 살인사건' 등에 주로 쓰인다. 정부 고위 공직자가 공단 직원들 앞에서 할 말은 아니다.

그는 또 '지난해 13조원의 약품비 가운데 2조원 정도가 리베이트로 추산할 수 있다. 국민들은 4~5조의 불필요한 의약품 복용을 추정할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과연 2조원 리베이트가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인지 해명이 필요하다. 특히 전체 약품비의 1/3이 남용으로 인한 비용이라니 국민 건강 차원에서도 반드시 규명해야 할 부분이다.

손 차관은 또 연간 100억이하 매출의 제약사가 전체 제약사의 75%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며 기업규모의 영세성을 지적하며 기업이 아니라 장사에 불과하다고 폄하했다고 전해진다. 기업과 장사의 차이가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으나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 손 차관이 정해준 '장사'의 의미는 규모가 '100억이하' 일 때 이다.

그는 옥석가리기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50개 정도의 제약사가 살아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기업을 죽이고, 살리고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온당한 것인지 묻고 싶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불법 리베이트 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된 것은 우리나 일본이나 다름없는데 일본은 문제해결을 기업의 자율과 책임에 의존해 오늘날 투명한 거래질서를 확립한 반면 우리의 경우 자율은 묻히고 정부의 강압과 철퇴만 눈에 띈다고 꼬집은 적 있다.

손 차관이 '몇몇 제약업체들이 리베이트를 뿌려서 번 돈으로 땅 사고, 집사고 했다'고 하는 데 이르러서는 말문이 막힌다. 이쯤되면 막가자는 것이다. 기업들의 공장 신축 등 우수의약품 생산을 위한 투자가 부동산 투기쯤으로 해석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손 차관 강연 관련 보도를 접하며 초상집 분위기의 제약업계를 향해 고위 공직자가 설마 이렇게까지 얘기했으랴 싶어 해당 기관에 사실 확인까지 했다.

손 차관은 행시 출신으로 복지부에서 공직을 시작해 보험정책과장, 사회복지정책실장, 보건의료정책실장 등 요직을 거쳐 차관까지 오른 인물이다. 제약업계가 그 정도로 형편없는 지경이라면 그도 그 책임에서 비껴나 있지 않다는 이야기 이다.

제약사들은 약가인하몫이 1조7000억원에 이르는 일괄약가인하 정책에 못 살겠다고 아우성 치나 정부에서는 엄살이라는 인식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 모양새를 보여온 것이 사실인데 이제야 무엇 때문인지 짐작이 간다. 손 차관은 일괄약가인하를 진두지휘해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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