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체형이 변하면 옷도 새로 맞춰 입어야 하듯이, 급성질환 환자보다 만성질환 환자가 훨씬 많아지는 환경이 되었는데도 진료환경은 바꾸기가 쉽지 않다. 우선 내가 지금 진료하고 있는 환경부터 만성질환 관리와 맞지 않는다. 예를 들어 최근 제2형 당뇨병(대부분 한국인 당뇨병이 이것이다)의 트렌드를 보면 개인별 상황에 따른 맞춤형 관리가 대두되고 있다. 운동, 음식습관, 교육 등의 '일상생활 습관 변화'를 좀 더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3
10여년 전 의약분업부터 최근 언급되는 포괄수가제의 확대 적용에 이르기까지 의료계를 둘러싼 정책의 변화가 많았다. 이러한 정책의 변화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의사 집단은 보건복지부가 과소 평가하고 있는 비용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불합리한 건강보험 수가체계를 근거로 들어 정책의 변화가 결과적으로 국민 건강권의 위협이 된다는 논지로 의견을 표출하고 있다. 이러한 의견 표출 방식은 의료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그리고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의사들의 의견을 표출하는 데 옳은 방식이다. 하지만 의료계에 몸 담
태양에서 금성까지 거리가 1억km, 화성까지가 2억3000만km니깐, 화성에서 금성까지는 대략 1억3000만km가 된다. 초등학교 때 암기하던 식으로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이라고 하면, 마지막인 명왕성까지의 거리가 60억km가 되니 화성-금성간 거리는 우주에서 보면 티끌만한 정도다. 인간관계를 연구하던 존 그레이(John Gray)는 1992년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으로 일약 대스타가 됐다. 전세계 40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면서 한국에서도 연애서의 바이블처럼 여겨졌다. 내용은
필자가 2010년 잠비아에서 했었던 소중한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당시 말라위라는 나라의 한국 선교병원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비록, 경험이 없던 졸업 직후였지만 의사라는 신분으로 병원에서 있다보니 소위 말하는 국제보건활동 현장의 한 가운데에서 이런 저런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중 ‘Mercy Flyer’라는 단체가 필자의 관심을 끌었다. 배를 타고 의료봉사활동을 펼친다는 ‘Mercy Ship’이라는 단체는 소문을 미리 알고 있었는데 Mercy Flyer라는 이름에 비행기를 타고 의료활동을 펼치
의학은 넓고 방대하다. 그래서 전문과를 두어 세부영역으로 나누어 진료한다. 그런데 이렇게 전문과목을 나누다 보면 과와 과 사이가 불분명하여 어떤 질환은 두 과가 같이 보게 되기도 한다. 소위 ‘허리디스크’라 불리는 병이 그렇다. 이 애매한 경계선에서 전문의들끼리 영역다툼이 생기는 일이 꽤 있는데, 이중 정신과와 신경과의 경계에서 일어난 다툼에 대해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SSRI는 우울증 질환에서 주로 쓰이는 약이다. 우울증은 정신질환이므로 정신과가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신경계 질환이 동반된 우울
공중보건의사로 보건소에서 근무하면 지역사회의 일차 의료를 담당하게 된다. 짧은 기간 근무했지만 1차 의료는 대학병원에서 하는 3차 의료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대학병원에서는 다양한 환자를 만나게 된다. 좋은 말로 하면 ‘다양한’이고 나쁜 말로 하면 ‘말기, 치료가 힘든’ 환자들이다. 대학병원에 있는 말기 암, 뇌졸중, 급성 심근경색, 급격히 악화된 SLE, 만성 신부전, 폐렴 환자들은 언제 상태가 악화될지 몰라 의사가 항시 대기해야 하고, 환자의 상태에 따라 언제나 의사가 접근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지
어느새 공중보건의사로 배치된지도 3년여가 다 되어 가고 있다.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일을 하면서 느낀 점도 많았던 시간 같다. 특히 한국의 의료 현실을 알게 되었고 덕분에 끝없는 실망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전 누군가에게 한국에서 의사를 하는 것에 대해 ‘구멍난 배에 1등급 좌석’이라고 비유한 적이 있다. 축생조차도 자기 밥그릇은 지키는데, 의사라는 집단은 그 것만도 못하고 끊임없이 정치꾼들의 재료로 쓰이면서 농락당해 이제는 의사의 유일무이한 권리인 처방권 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에 대해 느낀 좌절감의 한 표현
“분만시 의료사고가 발생했는데 의료진의 과실이 없는 경우 병원과 국가가 함께 배상한다.”참 이상한 말이다. 병원의 과실이 없는데 배상을 하라고 국가가 명령한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이런 말도 안 되는 법안을 반기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배상을 하는가. 이런 기본적인 상식에서도 한참 벗어난 논리에 많은 이들이 동의할 만큼 대한민국 국민들의 지적 능력이 수준 이하였던가. 아니면 수십년 간 쌓인 의사라는 특정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의 결과인가. ◇ 잘못한 게 없는데 배상하라고(?)사실
이경희대한공보의협의회정책이사대학교를 다니는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남들이 하는 만큼만 하면 중간은 간다’였다. 사실 그다지 좋아하는 말이 아니었고 맹목적으로 따라간 것은 아니었지만 나도 누군가의 선배로 종종 이런 말을 했었던 것 같은 기억이 있다. 이는 큰 흐름을 따라가면 무난하게 살수 있다는 의미이기도하며, 반대로 생각하면 ‘모난돌이 정 맞는다’처럼 괜히 눈에 띄지 말고 대세를 따르라는 말로 생각되기도 한다(?) 앞서 대세라는 말을 사용했다. 실제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수많은 큰 흐름(
나는 의사다. 의사라면 다들 잘 먹고 잘 사는 줄 안다. 실제로 나조차 의과대학 졸업장을 받는 그 순간까지 곧 내 인생에 장밋빛이 펼쳐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대학병원 인턴을 하던 1년과 공중보건의사로서의 3년 동안 중소 혹은 대기업에 일하는 친구들의 반도 안 되는 월급으로 연명하고 있다. 서민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절감한 4년이었다. 아니, 나도 서민이다. 모아놓은 돈은 없고 박봉의 수입에 고속도로를 타고 승용차로 15분이면 출퇴근하는 거리를 자동차 연료비 걱정으로 소형차로 바꿀 고민도 하고 그 15분이
어느덧 독감 접종으로 정신없었던 10월이 지나가고 11월이 됐다. 2년 전 신종플루가 유행한 이후로는 많은 사람들이 독감접종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독감접종에 관해 여러모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먼저 가장 많은 오해가 독감이 감기예방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접종을 하는 공무원 조차도 ‘감기예방접종’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다. 독감 접종은 어디까지나 그해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하여 면역을 형성하는 것으로 해당 바이러스가 몸 안에 들어왔을 때 미
지역 보건기관에서 의료 업무를 하다보면 일주일에 몇 번씩은 노인장기요양보험 등록을 하려는 환자와 보호자들이 방문을 한다. 필자가 공중보건의사로 발령받기 전 해에 첫 시행이 되었으니 이제 만으로 3년째를 맞는다. 벌써 가입자는 30만명이 넘어섰고, 배정된 예산은 상상이상이다. 한국은 지난 8월 현재 노인인구가 11%를 넘어 고령화 사회에 이미 진입했고, 늘어나는 노인인구에 맞춰 장기요양기관수는 매년 높은 증가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2008년 7월 제도 시행 초기 5000개소가 약간 안 되던 것이 며칠
얼마 전 미국에 이민 간 사촌형이 잠깐 귀국했었다. 이전부터 궁금했던 몇 가지를 물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의원과 병원과의 소통관계가 그 하나다. 한국의 1차 의원과 2차 3차 병원간의 관계는 별로 좋지 못하다. 아니 나쁘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까? 또 그로 인해 의사 환자 모두에게 여러 불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먼저 환자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불편한 점이 매 병원에 갈 때마다 했던 검사를 또 하게 되면서 생기는 시간적·금전적 낭비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장마가 끝나기가 무섭게 뜨거움은 온 대지를 달구고 연일 30도를 훨씬 웃도는 한여름의 뙤약볕은 나를 아침부터 움직이게 만든다. 이른 아침 출근하면 그나마 뜨거운 해를 피해 쾌적한 공간에서 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에 마음깊이 감사하며 오늘 하루도 밝은 얼굴로 환자를 마주한다. 번잡한 대도시까지 5분이면 이르는 거리의 지소라 매일 예방접종에, 진료에 북새통이 따로 없다. 사람 상대하는 일이 언제나 그렇듯이 때로는 억지를 부리고 난동을 피우는 사람들도 하루에 한둘씩은 꼭 있게 마
이번 수해로 정말 많은 피해가 있었다. 봉사를 갔었던 학생들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전국의 공장 농장 등 피해가 얼마에 이를지 알 수가 없다.사실 천재지변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불행한 일이라고 하지만, 천재도 대비에 따라 피하거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이번 수해를 보면서 필자는 인재라는 것은 의료계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수해와 같은 재앙처럼 확연히 눈에 띄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의료 정책이라는 것은 이미 20여년 전부터 조금씩 한국의 의료 현실을 갉아먹고 있으며, 현 상황의 의료 현실은 전 세계
5~6개월 전의 일이다. 진료실 문이 열리고 한 어른이 들어섰다. 50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이곳 시골 보건지소에서는 1년이 가도 보기 어려운 초진 환자였다. “안녕하세요. 이쪽으로 앉으시죠”라는 나의 말은 들은체 만체 하더니 주머니에서 안약 2개를 불쑥 꺼낸다. 그러면서 건네는 말씀이 “내가 작년에 눈에 염증이 있어서 받은 약인데, 이거 좀 처방해 줘”라고 다짜고짜 처방을 요구한다. 사실 안과진료는 보건지소에서 전혀 손을 델 수가 없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환자분은 막무가내였고, 난 정중하게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나가면
최근 이런 저런 이유로 필자는 공공의료에 대해 조사 및 접할 기회가 많아졌으며, 현재 공중보건의사로서 의료제공자의 입장에 서있다. 이런 입장에서 느낀 한국의 보건정책과 현실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쇼’, 즉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각 보건소도 그렇고 보건복지부도 건강보험공단도 스스로의 업적을 칭찬하기 일쑤이다. 올해는 어떤 것을 했고, 무엇이 성공적이었고, 한국의 의료보험제도가 세계적이다 등등 자랑하기 일쑤인데, 실태는 어떠한가? 단적인 결과로 한국의 복지수준은 세계적으로 하위권에
자세히 기억나지 않은 오래전의 일이다. 내가 ‘기억’이라고 하는 형이상학적인 소유물을 가지기 이전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자주 아팠다고 한다. 2.4kg의 미숙아로 태어난 나는 이미 아토피와 천식을 가지고 있었고, 대학병원의 전문의들도 이유를 모른다는 위장관질환으로 자주 고생을 했다. 할머니는 유명하다고 소문난 의사를 찾아 전국 각지를 들르며 나를 업고 다녔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한의사도 찾아 다녀보고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 굿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침과 한약, 음식으로 알레르기성 체질을 바꿔준다는 유명한 분을 만나게 됐고
최근 일하는 지소에서 민원이 발생한 적이 있다. 필자의 잘못이 있었다고 하면 분명히 있는 일이었고, 이내 보건소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어 진료시간에 공부를 했다는 이유로 “미친것 아니냐?” 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고, 덕분에 의료와 의학의 공부에 있어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의사가 의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종결점은 결국 환자에게 최선의 진료를 행하기 위해서다.과거는 어떠했는지 모르겠지만, 최근에는 거의 매일 새로운 지식이 업데이트 되고 있으며, 우리가 대학에 다니면서 배우는 의학 관련 지식만
살다보면 문득 평온한 일상 속에서도 숨이 막힐 때가 있다. 이렇게 보건지소 생활을 해온 지도 2년이 훌쩍 넘었건만 아직도 오후 2시를 넘긴 나른함은 때때로 나를 힘들게 한다. 사는 곳은 대도시 가운데지만 고속도로 IC를 옆에 끼고 사는지라, 논밭이 펼쳐지고 새들이 지저귀는 이곳 보건지소까지는 불과 15분여 거리다. 몇 년 사이에 지하철이 들어선다 하고, 지소 앞 왕복 2차선의 좁디좁은 도로는 어느새 6차선의 넓은 도로가 되었다. 시골 내음이 나던 한적하던 길에 차들이 바삐 다니기 시작한 것도 내 숨통을 조이는 한가지 이유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