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김지훈은?피아니스트 김지훈은 열정과 재능을 가진 천부적인 음악가로서 낭만적이며, 섬세함을 자랑한다.일찍이 예원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현 영재원), 서울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예원학교에서는 춘산장학금을, 서울예고에서는 신수정장학금을 받았을 만큼 우수한 성적을 자랑했다. 이후 연세대학교 음악대학에 진학하여 공부하였고, 독일로 유학을 떠나 독일Rostock 국립음대를 졸업했다. 독일에서는 전문연주자과정의 피아노를 전공했다.일찍이 유명한 피아니스트 신민자, 김대진, 김영호를 사사한 그는 학창시절 수원대, 서울신학대
[의학신문·일간보사]보통이란 무엇인가? 보통 사람은 누구인가? “보통 사람은 양적인 사람이다. 적은 것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더 나쁜 것으로부터 가장 좋은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쟁취해야 할 미래를 제안하는 원형을 상상하기 위해 자신의 상상력을 사용할 수 없다. 일상과 편견과 가정에 복종한다. 온순하고 개성이 부족하다. 완벽함과 뛰어난 행동엔 애써 별 의미를 안 두고, 전통 방식만을 따르려 한다. 이상주의자는 자신이 관찰하는 나쁜 것과 상상하는 좋은 것을 구별하는 질적인 사람이다. 상상력을 사용하여, 경
[의학신문·일간보사]새뮤얼 가스(Sir Samuel Garth, 1661~1719)는 영국 동북부의 더럼(Durham) 카운티에서 태어났다. 신사계급 가정의 장남인 어린 새뮤얼은 좋은 교육을 받았다. 지학의 나이에 케임브리지 대학 중 가장 긴 역사를 지닌 피터하우스(Peterhouse)에 입학했다. 과학에 명성이 높았던 피터하우스의 지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의학을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스물여섯 살에 임상의학을 배우러, 당시 유럽 의학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던 네덜란드의 레이덴(Leyden)으로 갔다. 사 년 후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의학신문·일간보사]알브레히트 폰 할러(Albrecht von Haller, 1708~1777)는 스위스 베른에서 사제와 치안판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몸이 약해서 가정교사에게 교육받았다. 병약했지만 그리스어, 라틴어, 심지어 아람어까지 배울 정도로 조숙하여, 네 살 때 이미 성경을 읽고 주위 사람들에게 설명했다. 십 대 때, 시, 드라마, 역사 서사시를 썼을 뿐만 아니라 고전 라틴어 시를 번역했다. 열세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베른에 있는 의사 의붓삼촌의 집에 머물면서 의학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병약하고 지나치게 수줍음 많은
[의학신문·일간보사]위대한 계몽주의 사상가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는 의사이며 철학자, 정치사상가다. 영국 서머싯(Somerset) 링톤(Wrington)에서 태어나, 같은 날 세례를 받았다. 아버지는 1640년대 영국 내전 동안, 변호사이자 작은 지주였다. 열다섯 살에 런던 웨스트민스터 스쿨에 입학했고, 스무 살에 옥스퍼드 크라이스트처치에 입학하여 논리학, 형이상학 및 고전 등을 배웠다. 졸업 후 석사학위를 받으며 강사로 임명되었다. 로크는 성직자의 길을 걸으려 했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스쿨에서 만난 리
[의학신문·일간보사]1951년 가을, 스물일곱 살의 젊은 미군 군의관 리처드 혼버거(Hiester Richard Hornberger Jr. 1924~1997)가 38선 바로 아래에 위치한 제8055 육군 이동 외과 병원에 부임되어 왔다. 부족한 군의관 수를 충족하기 위해 발령한 의사 징집에 따른 것이었다. 치열한 전쟁으로 가중되는 업무 중에도, 육군 의무대 대위 혼버거는 유머가 넘치는 매우 좋은 외과 의사였다.한국 전쟁 후 메인주로 돌아와, 재향군인회 병원 외과에서 근무하며 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워터빌(Waterville)
[의학신문·일간보사]“그렇게 해서 나는 삶을 두 배로 살겠다. / 잘 달리는 사람은 두 배로 달릴 수 있는 법. / 이 참된 기쁨, / 이 자연 속의 즐거움, 이 행복 속에서 / 나는 운명을 두려워하지도, 욕심내지도 않고, / 내일 나의 태양이 빛을 환하게 비추든, / 구름 속에 숨든 상관없이 / 매일 밤 담대하게 말하리라. / 나는 오늘을 살았다, 라고.”신현림 시인이 엮은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에 실린 에이브러햄 카울리의 시 「나는 삶을 두 배로 살겠다」[원제목은 ‘결의(발췌)’]의 부분이다. 형이상학파의 마지막
[의학신문·일간보사]그의 일생을, 어느 평론가는, 다채로운 삶이라 한다. 그러나 그의 삶을 잠깐이라도 들여다보면, ‘여러 종류나 형태가 한데 어우러져 다양하고 호화스럽다’라는 뜻의 형용사는 아무래도 군색하다. 한 사람의 삶을 한두 단어 속에 통째로 가두는 거침새를 무릅쓰고 굳이 일러야 한다면, 신산한 다채랄까?유기수(柳基洙, 1924년~2007년)는 정읍에서 태어났다. 태인보통학교, 1941년 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진학하였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 말기의 회오리는 그를 곧 세찬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고 들어갔
[의학신문·일간보사] 「 미술, 문화로 읽다 」 연재를 마치며… 2018년 10월 1일자 ‘의학신문’에 이 연재 첫 번째 글 ‘「미술, 문화로 읽다」를 연재하며’를 다시 읽어 봤다. 호기롭게도 글 말미에 난해하다는 현대미술을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미술을 문화의 한 단면으로, 그러니까 ‘사람들이 만들어온 수많은 무늬(人文) 중 하나’로 풀어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초심은 어디로 갖는지 모르겠고, 상투적인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한마디로 ‘과부하가 걸려서 완전히 방전된 배터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학신문·일간보사]부모는 농노였다. 아버지는 제화공이며 창고지기, 어머니는 하녀. 부부가 농노에서 해방되었을 때, 프리드리히 라인홀트 크로이츠발트(Friedrich Reinhold Kreutzwald, 1803~1882)는 열한 살이었다. 어린 크로이츠발트는 고대 에스토니아 전설 속에 등장하는, 자비로운 거인 전사 칼레브(Kalev)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부모의 높은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마침 모라비아 교회*의 도움으로 에스토니아 수도인 탈린의 지역 독일 학교에서, 부모의
[의학신문·일간보사]‘영어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 중 한 명’, ‘캐나다에서 가장 널리 읽히고 사랑받는 캐나다 최초의 국민 시인’, 윌리엄 헨리 드러먼드(William Henry Drummond, 1854~1907)는 의사다. 태어났을 때 이름은 윌리엄 헨리 드럼(Drumm)이었다. 당시 아일랜드는 극심한 빈곤의 시기를 겪고 있었고, 윌리엄이 열 살이었을 때 가족은 캐나다에 이민했다. 새로운 땅, 몬트리올에 도착한 아버지는 성을 드러먼(Drummon)으로 바꾸며 각오를 세웠지만, 이태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극심한 가난에 어머니는
[의학신문·일간보사] 현대미술 - 새로움을 숭배하기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는 이탈리아 출신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 1960~ )의 초대전 ‘WE’가 열리고 있다. 그는 2003년 운석에 맞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쓰러진 교황을 극사실적으로 제작한 작품 ‘The Ninth Hour’를 전시하여 서구미술계에서 장난꾸러기라는 애칭을 얻었다. 카텔라의 대표작 중 하나가 2019년 작으로 전시장 벽에 바나나를 포장 테이프로 붙여 놓은 ‘코미디언’이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이번 리움미술관에 전시 중이다. 그런데 지
[의학신문·일간보사]“영국 문학의 영원한 영광 중 한 사람이자 장려(壯麗)한 산문의 마지막 작가, 토머스 브라운.” 의학학술지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1978년 12월)에 아일랜드 작가 냐일 쉐리던이 게재한 글의 첫머리다. 토머스 브라운(Thomas Browne, 1605~1682)은 런던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 브로드게이트 홀 대학에서 개인적으로 의학을 공부하고, 옥스퍼드 의사의 조수로 일했다. 그 후 프랑스 몽펠리에 대학교와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교에 다녔고, 스물여덟 살에 네덜란드 레이든 대학에서 의학 학위를 받았다. 서른두
[의학신문·일간보사]곤살레스 마르티네스(Enrique González Martínez, 1871~1952)는 의사, 외교관이며, 이십 세기 멕시코 문학에 큰 영향을 끼친 시인이다. 멕시코 할리스코주의 과달라하라에서 교사 아버지와 지적이고 활력적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감수성이 진한 소년은 문학 작품 속의 명문구(名文句)에 흥미를 집중했다. 과달라하라 대학 의과대학생으로서 벨렝(Belem) 병원에서 질병과 죽음을 매일 접하면서, 젊은 작가의 문학적 감성은 더욱 비옥해졌다. 생명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깨우친 곳도, 많은 문학적
[의학신문·일간보사] 삶과 멀어진 미술 Ⅰ - 미술관의 탄생 코로나 사태 이전, 인문학 열풍 속에 ‘미술사는 인문학의 꽃’이라며, 미술과 접목한 인문학 강좌가 활기를 띠었다. 대학과 미술관은 물론이고, 동네 주민센터까지 인문학과 연계한 미술 강의가 개설될 정도였다. ‘미술인만의 리그’를 벗어나 ‘미술의 대중화’를 지향한 한국미술계 관계자들은 이러한 현상에 매우 고무되었다. 코로나가 진정되며 대면 강의가 재개된 지금, 그 열기가 지속될지 궁금할 따름이다.올 초 국내 언론은 작년 국내 미술시장 거래액이 드디어 1조원을 돌파했다며 한국
[의학신문·일간보사]매혹적 복잡성과 뛰어난 다재다능함을 지닌 소아과 의사이자 작가, 레이폴트(Christiaan Frederik Louis Leipoldt, 1880~1947)는 케이프 식민지(현재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선교사 부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출생지에서 북쪽으로 수백 마일 떨어진, 선사시대 암벽화와 함께 꽃의 다양성이 풍부한, 클랜윌리암 마을에서 자랐다. 그곳에서 식물 채집을 하던 식물학자 해리 볼러스를 만났다. 세상 현상에 호기심 많은 열여섯 살의 소년과 예순세 살의 식물학자는 이내 가까워졌다. 레이폴트의 꽃에 관한 열
[의학신문·일간보사]헨리 본(Henry Vaughan, 1622년~1695년)은 초기 현대 영국의 가장 매혹적인 시인 중 한 명이다. 웨일스에서 태어난 본은 열여섯 살에 옥스퍼드 지저스 칼리지에서 공부했다. 학위를 받지 못했지만, 약 이태 후 그의 아버지는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그를 런던으로 보냈다. 내전으로 인해 고향으로 돌아와 왕당파 편에서 복무한 후, 고향인 브렉녹셔에 정착하여 평생 시골 의사로 개원했다. 물리학에도 식견이 깊어 서른세 살에, 『밀폐 물리학: 또는 올바른 보존과 건강 회복』이라는 제목의 라틴어 의학 논문 번역본
[의학신문·일간보사] 미술과 페미니즘 Ⅹ - 루이스 부르주아 70세까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면서 그래도 작업을 계속해 왔다면, 그 작가에게 예술은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을까?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것은 차치하고, 스스로 어떻게 자존감을 지키며 작업해 왔을까? 실제 그런 삶을 산 작가, 프랑스계 미국 작가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를 살펴보자. 루이스 부르주아는 일흔 살이 넘어 비로소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꽤 늦은 나이였지만 100수를 하며, 30년 동안 주목받는 작가로 활동했으니
[의학신문·일간보사]“2020년 11월 19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해양 박물관과 시립 도서관은 11월 19일부터 22일까지 나흘간, 대구 잡이 선단의 극작가이자 의사의 작품을 하루에 두 편씩 소개한다. 발췌한 내용을 읽을 수 있다.”이십 세기 포르투갈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극작가이며 시인인 베르나르두 산타레누(Bernardo Santareno, 1920~1980)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행사 안내문이다. 산타레누의 본명은 안토니우 로사리우(António Martinho do Rosário)
[의학신문·일간보사]1937년 예일 대학 도서관, 에밀리 디킨슨의 작품 전체를 수집한 최초의 학자로 잘 알려진 토머스 존슨 교수는, 4절지 크기로 7천 쪽이나 되는 육필(肉筆) 원고를 가죽으로 정성껏 장정한 책을 발견하였다. 자신의 글을 절대로 출판하지 말라는 유언 때문에 이백 년 이상 잊혔던 에드워드 테일러의 시집이었다. 곧 테일러는 여류 시인 앤 브래드스트릿과 함께 초기 미국의 가장 잘 알려진 시인이 되었다. 에드워드 테일러(Edward Taylor, 1642~1729)는 의사, 목사, 시인이다. 영국 레스터셔(Leicester